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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칼럼 해설위원/성민수 라스트라운드

아쉬움 남긴 크로캅의 예상된 패배


어느새 옛 친구들이 그립고 새롭게 만난 이들에겐 마음을 터놓기가 어려운 나이가 되어버렸다. 인생의 선배들은 이미 겪은 일이겠지만 누구나 그렇듯 본인의 입장이 되지 않는 한 느끼지 못하는 것들, 청춘이라는 녀석과 멀어진 입장이 되고 보니 그게 소중한 것을 알겠다.

그래서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동갑내기 선수의 분전이나 선배세대의 존재감을 보면서 희망을 갖곤 한다. 이성으론 미르코 크로캅이 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감성으론 그의 분전을 바랬다. 승산이 거의 없을 것임을 알면서도 마음이 기우는 건 세월에 대한 저항일까? 아니면 동년배에게 나를 투영시켰기 때문이었을까?

UFC 119 대회에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를 대신해서 참가한 미르코 크로캅은 결국 대다수의 예상대로 패배하고 말았다. 경기를 앞두고 훈련 중 눈부상을 당하는 불운은 더욱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는데, 경기를 앞두고 했었던 발언들을 다시 곱씹어보면 본인조차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과거 격투기의 대명사였던 PRIDE에서 그는 표도르를 쫓는 사나이였고 주최 측에선 크로캅과 반달레이 실바라는 외국인 인기 스타에게 포커스를 맞췄기에 표도르의 수성보단 크로캅의 타이틀 탈환에 중심을 두기도 했었다. 그러나 불과 5년 뒤 크로캅은 더 이상 선수로서 활동을 이어가는 게 의미가 크지 않을 정도로 몰락하고 말았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한 때는 일본에서 격투기를 주름잡았던 미르코 크로캅은 UFC에 와서 과거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으로 체면을 구겼으며 119회 대회에선 3라운드까지 가긴 했지만 무기력한 모습으로 많은 이들을 실망시켰다. 물론 프랭크 미어가 강한 선수이긴 하며 그의 승리도 반갑지만 그와 반대로 크로캅은 이젠 은퇴시기를 정하는 게 올바른 선택으로 보일 정도로 다른 선수들과의 격차를 메우기는 어려워 보인다.

올라가는 길이 있으면 내려가는 법도 알아야 하는 것, 결국 그는 내리막길에 있었고 이제는 그 속도는 더 빨라진 게 아닌가 싶다. 어느 순간부터 청춘이라는 녀석과 하루하루 이별해가는 나를 보면서, 같은 세대의 사람들이 서서히 약해져가는 것을 느끼면서 세월을 실감하는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아니라고 애써 우겨보지만 그게 생각처럼 되는 일은 아닌 듯싶다.

물론 격투가들 중에서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은 기량을 보이는 이들은 존재한다. 40대 중반임에도 엄청난 활약을 보이는 랜디 커투어도 있고, 브록 레스너를 비롯한 30대 초중반 선수들을 본다면 꼭 나이가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다. 비록 강자들과 상대하는 건 아니지만 댄 새번은 50대임에도 아들 뻘 되는 선수들과 싸워서 이기는 활약을 아직도 보이기도 한다.

크로캅의 부진은 UFC에 맞게 진화하지 못했고 이는 진출 초기부터 예측되었던 바이기도 하다. 이성으론 그렇게 판단이 가능하지만 강한 모습만 기억나던 그가 무너지는 건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기 참으로 힘든 일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에선 이번 대회에서 크로캅의 부활이 포커스였다면 현지에선 미어의 승수 쌓기가 관전포인트였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팬들은 그의 승리를 간절히 바랬는지도 모르지만 그의 승리를 기대하긴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다.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하나 둘 씩 달라질 때, 세월이 가는 걸 느끼고 아쉬움이 남게 된다. 쉽게 변하는 것에 대한 이질감, 그게 어떤 이들에겐 신선함일 수도 있지만 자꾸 아쉽게 느껴지는 건 이미 너무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과거에 대한 추억 때문일까?

 

<사진=www.mirko-croco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