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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칼럼 해설위원/성민수 라스트라운드

표도르의 신화는 끝났지만 42세 헨더슨의 승리도 있었다

최근 2연패 후 은퇴설도 나왔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돌아온 에밀리아넨코 표도르는 체중도 적고 나이도 많은 댄 헨더슨에게 무너지면서 더 이상 세계 최강이라 부르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두 베테랑이 투혼을 불사른 이번 경기에선 화끈한 타격전이 이어지다가 하프가드 상태에서 헨더슨의 반격에 이은 파운딩이 터졌고, 1라운드 4분12초 만에 레프리 스톱으로 승부가 나고 말았다.

조금 이르게 끝낸 느낌도 있지만 심판의 결정은 존중받아야 하기에 불만은 나올 수 있을지언정 재량에 맡겨야 한다고 본다. 패한 표도르 마저도 약간 아쉬운 면은 있지만 수긍한다고 했으니까. 다만 표도르의 팬들 입장에선 케빈 렌들맨의 수플렉스를 맞고서도 불사신처럼 일어났고 이마까지 찢기는 부상을 입었음에도 별다른 아픈 티를 내지 않았으며 후지타 가즈유키의 강타를 맞고서도 경기를 뒤집었고 최홍만 선수에게 힘에서 밀렸어도 관절기로 뒤집은 그의 과거를 떠올리면 허무함을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최근의 표도르는 대부분 러시아 선수들처럼 3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노쇠화 되는 흐름과 매우 유사했고 그의 최강 신화는 확실히 깨졌다고 해야 되겠다. 경기 후 자주 나왔던 은퇴설에 대한 질문을 받았지만 경기 전과 마찬가지로 신께서 정하신 바에 따르겠다는 답을 남긴 채 떠나버렸는데, 어떻게 되든 그의 업적은 폄하될 수 없을 것이라 본다.

표도르만의 입장만을 놓고 본다면 한동안 나왔던 정계 입문설을 고려할 때, 베흐둠과의 경기에서 좀 더 차분하게 싸워 승리한 뒤 은퇴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UFC에 가지 않았던 것도 일면에선 완벽한 기록을 갖고 ‘강한 러시아인’의 이미지로 정계에 입문하는 의미도 있었던 걸 고려할 때 최근의 연패는 갈수록 수렁으로 빠지는 느낌이다.

베흐둠과의 경기에선 급히 들어가다가 패했고 안토니오 실바에겐 체중차를 넘지 못하고  무너졌으며 이번엔 일본 무대에서 도저히 기량이 비교되지도 않았던 댄 헨더슨에게 패했기에 과거의 영광으로 돌아가긴 힘든 상태로 보인다. 그러나 메인이벤트를 차지하기엔 다소 힘든 입장일 뿐, 여전히 전설임은 분명하다.

이번 경기를 놓고 표도르의 패배만을 볼 것이 아니라 70년 생으로 우리 나이로는 42세인 댄 헨더슨에 대해서 조망할 필요도 있단 생각이 든다. 40대가 넘어서도 어떻게 정상급의 기량을 유지할 수 있으며 미들급,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에 이어 넘을 수 없던 장벽인 표도르를 꺾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표도르의 패배로 격투기가 끝난 것처럼 볼 필요도 없다. 어차피 무하마드 알리, 마이크 타이슨도 세월이 가면서 다 무너졌고, 표도르 역시 신화였을 뿐 계속 경기를 하는 경우 언젠가 패할 것은 분명했으니까.

하프가드 상태에서 잘 빠져나온 헨더슨을 볼 때, 미국 무대에서 정보교류를 하면서 꾸준하게 발전한 모습과 러시아에서 다소 폐쇄적인 훈련과정을 하던 표도르와 분명 차이가 있어 보인다. 물론 이번 대결을 앞두고 네덜란드에서 타격을 갈고 닦는 등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고, 실제 경기도 표도르에게 유리했던 장면이 꽤 많았으며 승리를 누가 가져가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난전이었지만 결국 패배였고, ZUFFA 자체가 연패하는 경우는 상당한 압박을 가하는 곳이므로 결코 가벼운 결과는 아니라 하겠다. 그래도 그가 이룬 업적은 분명 존중받아 마땅하다 생각한다.

표도르의 최강 신화는 끝났다. 그러나 지금은 마이크 타이슨이 제임스 더글라스에게 진 것과는 분명 다른 상황이다. 각성하고 다시 돌아온 한 때의 최강 파이터를 잡아낸 42세 헨더슨이 칭찬받아 마땅한 일전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