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타 스포츠의 전문가가 아니기에 어느 정도 정확한지 확신하지 못하겠지만 야구나 축구에선 성적이 좋으면 구단으로부터 그에 걸 맞는 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프로레슬링은 상품성을 담보로 하기에 될 만한 스타를 밀어주며 일반 기업도 실적이 좋은 사람이나 부서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이다.
그런데 격투기는 그렇진 않다. 이는 비즈니스 방식이 다른 미국이나 일본 모두 비슷하다. 미국은 유료시청채널에서 올릴 수 있는 판매수입이 높거나 팬들을 많이 끌어 모으는 선수가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일본 K-1은 공중파에서 방영되어 가깝게는 복싱, 멀게는 드라마나 연예프로와 경쟁관계가 되기에 시청률을 위해 스타성이란 부분이 중요하게 평가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일본에선 시청률만을 위해 만들어진 이벤트성 경기들이 펼쳐지는데 최홍만이 나오면 무조건 열광하던 시절, 그런 비밀을 모르는 팬들이 TV에 시선을 고정하자 우리나라 격투기 시청률은 케이블임에도 공중파를 압도하기도 했다. 허나 같은 마법은 식상한 법, 이젠 눈을 떠서인지 이런 경기들에 대한 역반응도 커졌다.
실력보단 스타성을 갖춘 선수가 대우를 받는 풍토에서 손해를 보는 대표적인 선수는 미들급의 최강자 앤더슨 실바, K-1의 스타 새미 쉴트이다. 스타성도 있으나 여성이라서 대우가 좋지 못한 지나 카라노는 또 다른 희생양이지만.
이와 달리 킴보 슬라이스, 밥 샙 같은 선수들은 독특한 카리스마로 실력에 비해 좋은 대우를 받았고 특히 밥 샙은 한 때 일본에서 엄청나게 많은 CF를 찍기도 했다. 실력은 있지만 너무 빨리 기회를 얻은 브록 레스너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일본은 프로레슬링과 격투기의 경계가 다소 모호한지라 EXC라는 단체가 망하자 밥 샙과 킴보 슬라이스를 태그팀으로 만들 계획도 있었으니 여하튼 이런 인기스타들은 부르는 곳도 많다.
이런 분류표에서 다소 모호한 경우가 바로 에밀리아넨코 표도르다. 앤더슨 실바가 미들급 최강으로서 앞으로 상위체급인 라이트 헤비급도 교란시킬 예정이라면 표도르는 헤비급의 최강이다.
표도르는 일본에서 실력에 맞는 대우를 받진 못했으나 미국 시장으로 넘어가면서 상황이 바뀐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을 써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표도르는 계속 그대로였지만 최강이라는 명성에 매혹된 UFC는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했다. 허나 그의 매니지먼트와의 합의를 끌지 못하면서 항상 협상은 결렬되었고 최근에도 UFC와 스트라이크 포스가 베팅을 한 끝에 표도르는 금전적인 부분보다는 세부조건이 만족스러운 스트라이크 포스로 가기도 했다. 그래도 표도르는 실력만큼의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제안을 받았기에 또 다른 절대 강자 앤더슨 실바에 비해서는 좋은 처지이다.
왜 격투기는 실력에 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는 걸까? 다른 종목들처럼 팀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매출이 개인에 따라서 크게 변동되기 때문이다. 가장 비슷한 분야가 바로 복싱이 아닌가 싶다. 이들 역시 개인의 이름값에 따라서 이벤트의 성과가 확연히 다르다. 2007년 5월 오스카 델 라 호야와 메이웨더 주니어의 대결은 240만 가구의 판매가 이뤄지면서 호야가 한 번 대결에서 5800만 달러, 메이웨더가 25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물론 이 수입은 매니지먼트와 선수, 방송사 등이 사전에 합의한 비율로 나눴지만 고액임은 틀림없다. 그 전 최고 기록은 1997년 타이슨-홀리필드의 대결로 타이슨이 3천만 달러, 홀리필드가 35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만큼의 실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스타성이 부족해 흥행이 되지 못한 이들도 부지기수이다. 특히 오스카 델 라 호야는 뻔히 자기가 질 줄 알면서도 경기를 만들어 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린 영리한 프로모터라 할 수 있다.
실력대로 대우받지 못한다는 부조리함은 꼭 격투기나 복싱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표면적으론 서두에서의 말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좀 더 거시적으로 살펴보자. 타 종목에서도 한 개인을 보고 들어오는 광고를 비롯한 기타 수입이 있기에 실제로 받는 대우는 선수가 경기장에서 보이는 활약에 반드시 비례하진 않는다. 골프나 자동차 경주 스타들이 받는 금액을 보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결국 선수는 다양한 변수에 따라서 대우를 받는 것이고 경기장에서의 실력은 그 중에서 하나의 변수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외의 변수들로는 외모, 인간성, 그가 속한 국가나 민족, 팀, 활약하는 영역 등이 되겠고.
그러니 격투기 단체로서도 실력만 좋은 선수에게 최고대우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카리스마가 부족해 팬들을 끌어 모으지 못하면서 지나치게 강한 선수를 단체는 선호하지 않는다. 같은 선수가 3년 챔피언을 해먹으면 망한다는 속설이 나온 이유는 달리 있는 게 아니고 K-1이 모호한 판정으로 새미 쉴트를 토너먼트에서 억지로 탈락시키는 일도 그런 이유이다. 너무 냉정한 말이지만 아쉽게도 이게 현실이다. 수많은 2위권 단체들이 연이어 사라진 역사를 본다면 격투기 단체들도 생존에 급급하므로 선수들을 예상되는 수입에 기반 해 대우하는 게 어쩌면 가장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불운한 강자의 범주에 들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자국의 단체가 강하면 편하다. 그나마 외국인에게 공정하다는 UFC도 대회 참가자가 대부분 미국인인데 이는 미국인들이 대부분의 매출을 올려주기 때문이다. 격투기의 주도권은 미국으로 넘어갔으니 우리나라 선수로선 억울한 부분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나마 UFC 방영권이 있으니 오히려 비슷한 실력의 미국 선수들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는다는 장점도 있다.
그나마 불운한 강자가 되지 않기 위해선 두 번째로 자기가 목표로 하는 시장의 언어를 배우거나 인지도를 높이면서 동화되려는 노력을 보이는 것이다. 최홍만이 일본, 표도르가 우리나라 연예프로에 나오거나 추성훈이 대한민국에서 보이는 다양한 움직임은 이 범주에 수렴된다. 물론 우리나라 시장이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격투기 방영권으로만 본다면 세계 2위급이므로 적어도 선수가 단체에게 큰소리 칠 구석은 될 수 있다.
결국 자신의 상품성을 높여야 제대로 대우받는다는 말이 되겠다. 실력을 링에서 보인 결과가 아니라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상품성과 같단 말로 본다면 선수들이 제대로 대우받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고. 결국 격투기는 격투기 그 자체가 아니라 경기를 치르는 과정에서 자본이 따라오므로 단체는 그걸 염두하고 운영하며, 선수들은 그 자본을 끌어오는 영향력에 따라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치열하게 노력하는 선수들에게는 참으로 냉혹한 말처럼 들리지만 현실은 그렇다. 그러나 현대사회 구성원 중 이런 자본의 시스템에서 자유로운 이들은 많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좀 더 상품성을 기른다면 보다 선수생활 중엔 풍성한 수확을 올릴 수 있을 것이고, 은퇴를 해도 좀 더 영리하게 생업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