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적인 실수로 몰락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잘나가던 금융인이 서브프라임을 예측하지 못해 몰락한 경우도 있고 잘못된 판단으로 본인이 그간 쌓은 업적을 송두리째 날리는 사례도 존재한다. 이런 게 인생이라며 자조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이들은 거기에 사로잡혀서 한동안 헤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격투기 판에도 그런 존재들이 적진 않다. 그 중에서 최근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안드레이 알롭스키가 아닌가 싶다. 한 때는 세계 헤비급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여겨졌던 그는 빠른 몸놀림과 카리스마 있는 외모로 인기를 끌었고 UFC 프로모터 데이너 화이트가 아끼는 선수이기도 했다. 격투기에 도움 되기 위해 복싱을 수련하는 것을 넘어 두 마리의 토끼를 쫓고 싶었는지 복서로 전향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찬 발언도 늘어놓을 정도로 한 때는 정말 잘나가던 선수가 바로 알롭스키다.
새롭게 출범하던 어플릭션이란 단체에서 구미당기는 제안이 들어오자 UFC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응한 그는 처음엔 벤 로스웰을 꺾었고 제휴단체 EXC에선 로이 넬슨을 잡으면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2009년 1월 24일, 황제 에밀리아넨코 표도르에게 1라운드 3분 14초에 패한 후 서서히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2009년 6월 6일, 부활을 노리면서 만났던 브렛 로저스와의 경기에선 무서운 돌진에 이어져서 나온 타격에 22초 만에 무너지면서 부활은 커녕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주는 제물로 전락한다. 로저스에게 패한 후 소속단체 어플릭션은 알롭스키와의 계약이 만료되었고 다른 좋은 선수들도 넘쳐나니 그와 재계약 할 의사는 없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하게 된다. 어차피 어플릭션은 경영문제로 인해 사라졌으니 전후순서만 바뀌었을 뿐 헤어지는 건 똑같았겠지만 그의 주가는 거침없이 떨어졌기에 이전처럼 고액의 대전료를 줄 단체는 없는 상황이다.
한때는 복서로 변신해서 비탈리 크리츠코의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 유럽에서도 인정받을 것이라며 당당하게 외졌지만 브렛 로저스에게 당한 KO 때문에 설상가상으로 60일 간의 의료적인 자격정지를 받아 원래 하려고 했던 복싱 경기마저 치르지도 못했고 턱이 약한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상황이라 냉정하게 봐서 그에게 잡힐 정상급 복서는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몰락을 위로한 이는 많지 않았다. 한때 미모의 여자친구가 공개되면서 수많은 이들의 부러움이 섞인 질투를 받았지만 정작 위기로 내몰리자 플레이보이 출신의 미녀 패트리시아 미쿨라는 그에게서 떠난다. 그로 인해 더더욱 실의에 빠진 알롭스키는 얼마 전엔 더욱 충격적인 결정을 내린다. 바로 러시안 룰렛 게임이다.
알롭스키는 이번 달 초에 러시안 룰렛 게임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파이터닷컴이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실토했었다. 권총에 총알 한 발을 장전한 후 이마에 댄 채 방아쇠를 당겼지만 빈 실린더였기에 살았다는 그의 이야기는 안도감이 아니라 당황스러움을 줄 수밖에 없는 발언이리라.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만으로 16세였던 1995년에도 러시안 룰렛 게임을 했었다고 한다. 사람이 궁지에 몰릴수록 과거에 했던 일을 답습하는 경향이 있는데 알롭스키가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알롭스키는 인터뷰에서 밝히길 최근엔 하염없이 울다가 무력감에 시달리는 상태이며 특히 여자친구와 헤어진 충격은 너무도 컸다고 한다. 그는 모든 것에 무관심해졌고 무언가 하고픈 의욕도 없다고 한다.
그의 몰락은 승부의 세계에서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결과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인생이란 올라가는 길이 있으면 내려가는 법도 있으니 누군가가 승자로서 환호를 받으면 패자의 역할이 될 사람도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게 그의 일만은 아니란 것이다. 타격에 의해 계속 축적되는 뇌손상 혹은 뇌진탕, 약물이나 음주로 인한 자극, 결과에 따른 심각한 감정의 기복 등은 적지 않은 베테랑 파이터들이 겪어야 하는 결과이다. 물론 러시안 룰렛을 했다는 뉴스는 그가 자신에게 관심이 쏠리도록 거짓으로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일단 액면그대로 믿는다면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게다가 그는 그다지 말을 지어내지 않아왔던 인물이며 최근 가장 급격하게 몰락한 스타이기에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분명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릴 것이다.
알롭스키는 순간적으로 변한 자신의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반드시 알롭스키만의 것은 아니고 이미 몇몇 선배파이터들도 경험했던 일이다. 한 때는 영장류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약물에 찌든 마크 커의 현실은 어떻게 한 사람이 몰락하는지를 여실하게 대변해준다.
단 두 번의 패전으로 알롭스키는 거의 모든 것을 잃었고 아직 많다고 할 수 없는 만 30세에 두 차례나 러시안 룰렛 게임을 했을 정도로 기복이 심한 삶을 살고 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가 자신에 대해서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했던 걸까? 이 분야가 그렇게 만든 걸까? 아니면 인생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