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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칼럼 해설위원/성민수 라스트라운드

선수의 태도를 그대로 믿지 말자

[성민수의 라스트라운드] 최홍만 선수가 국민적인 인기를 끌던 시절, 그와의 경기를 앞둔 레미 본야스키가 갑자기 최홍만의 커다란 사진을 발로 차서 머리 부분만 떨어지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분노했고 신사라고 여겨지던 레미 본야스키는 순식간에 무뢰한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2009년 현재, 그걸 기억하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UFC에서 대표적인 앙숙은 프로모터 데이너 화이트와 전-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티토 오티즈였다. 오티즈가 UFC를 떠난 뒤 둘은 연이은 폭로전을 벌이면서 더욱 갈등이 심화되었다. 그러나 최근 오티즈가 UFC로 돌아오자 화이트는 대대적으로 환영하면서 마치 과거는 안중에도 없는 듯 오랜만에 상봉한 동생과 해후하는 분위기였다.

도발적인 행위는 팬들을 원초적으로 분노하게 만드는 고전적인 장치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팬들을 유입시키거나 기존 일반팬들의 결속도를 다질 수 있기에 계속적으로 쓰이고 있다. 격투기 선수들은 경기 전엔 언론을 통해 서로를 잡아먹을 듯 험담하다가 경기가 끝나면 막상 언제 그랬냐는 듯 포옹하면서 갈등이 사라지곤 한다. 물론 실질적인 증오가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는 당사자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마저도 무한정 갖고 가기엔 인생이란 녀석이 주는 변수가 너무 크고, 사람의 마음이란 항상 똑같지 않으며 다음 경기나 자신의 생업에 임하면서 바뀔 수도 있다.

최근 UFC의 이슈메이커는 브록 레스너다. WWE 출신으로 이후 미식축구에 도전해 실패했지만 격투기 무대에 뛰어들어서 UFC 헤비급 챔피언까지 올랐다. 그는 도발적인 발언이나 행동으로 인기를 끌고 있고, 그의 인기는 그가 메인이벤트를 차지한 UFC 100회 대회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는 자체로 입증해준다.

그는 WWE 시절엔 그다지 말을 잘하지 못하는 선수였다. 이에 악당 매니저가 붙어서 대신 말을 해줬던 다소 수줍음이 많은 선수인데 이렇게 변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긴 하다. 레스너가 UFC 100회 대회 후 했던 도발적인 발언을 듣고 가장 크게 역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프랭크 미어, 랜디 커투어, 그리고 쉐인 카윈이다. 댄 핸더슨은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발언을 했었지만.

이들을 살펴보자. 우호적이던 핸더슨을 제외하곤 모두 다 헤비급이다. 게다가 레스너와 대결을 했거나 잠재적으로 대결할 사람들이다. 당시 쉐인 카윈은 상대로 예정되진 않았지만 잠재적인 도전자 후보군에 있었고, 그의 소원대로 2009년 11월에 있을 타이틀 경기에서 도전권을 획득한 상태다. 미어나 커투어는 모두 레스너에게 무너진 이력이 있다.
체급이 다른 BJ 펜이나 조르쥬 생 피에르가 레스너의 당시 발언에 대해서 개인 의견이 있을 것이나 그게 크게 다뤄지진 않았고, 그들도 애써서 크게 보도되도록 노력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럴까? 돌발적인 발언을 한 이들은 흥행이 되는 경기를 본인이 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다. 랜디 커투어도 은퇴 후 다시 링에 돌아왔지만 그 이유는 이전에 비해 대전료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레스너와의 재경기가 큰 이슈가 된다는 걸 알고 원할 뿐이고 이에 그의 발언엔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최근 프랭크 미어가 재경기를 하고 싶다는 의지를 계속 피력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된다. 쉐인 카윈도 타이틀을 노리고 있으니 그렇게 나가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는 간혹 나오는 음원이나 사진 유출, 열애설, 도발적인 폭탄선언 등 연예인의 이슈와도 어느 정도 유사성을 지닌다. 외국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이슈 만들기가 있으니 꼭 우리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연예인의 이슈엔 정말 맞는 이야기도 있지만 간혹 자신들의 차기 계획의 홍보를 위해서 언로를 이용해 시선을 집중시키기도 한다고 들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격투가들의 도발행위는 적지 않은 경우가 홍보나 이슈를 집중시키기 위한 것들이다.

격투가들의 도발적인 발언이 그렇게 나쁜 건 아니다. 어차피 현대 사회에선 수많은 이들이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이슈를 만들고 관심을 끌어 대중을 모은 뒤 그걸 흥행으로 연결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팬들이 유입되면 프로레슬링 팬을 UFC로 이끈 브록 레스너가 되어서 흥행의 효자로 인정받아 좋은 대우를 받을 수도 있고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단체의 인정을 받는 건 가능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본야스키와 최홍만의 경기는 단 한 번의 발차기만으로도 대한민국이란 시장이 들썩거리지 않았는가?

도발적인 행위는 이 업계의 뻔한 마법이다. 그래도 일반적인 팬들은 잘 모르고 같이 흥분할 수도 있다. 그럼 또 어떤가? 어차피 엔터테인먼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즐기면 그만일테니. 자, 필자는 이제 마법을 가르쳐드렸다. 물론 미리 알고 있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을 끄는 것보단 선수들의 행동을 부처님 손바닥에서 보고 있는 듯 관찰하면 더욱 흥미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