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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칼럼 해설위원/성민수 라스트라운드

美팬들은 크로캅의 몰락에 관심이 없었다


[성민수의 라스트 라운드] 필자는 이 분야의 산업적인 측면을 조망하기에 거시적인 면에서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찾은 답은 대회가 펼쳐지는 나라의 현황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단체의 동향은 대한민국의 특수성에서 해석을 해야 한다. 일본 단체는 일본 내의 시청률을 챙겨야 하고 미국 단체는 미국 팬들의 반응을 먼저 고찰해야 한다.
예를 들자. ‘대장금’이란 드라마를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서 해외에 팔았다고 한다면 해외와 관련해서 우선 중요한 건 판권료를 챙기는 것이다. 그 후 그 나라에서 생기는 드라마와 관련된 수요는 차후 챙겨야 할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우선은 프로그램을 파는 게 먼저다.

이는 격투기에서도 비슷하다. 미국의 UFC가 우리나라와 관련되어서 할 수 있는 건 판권을 파는 것이 우선이다. 흥행을 위해서라면 그 나라와 관련된 파이터 하나 둘을 데려가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추성훈은 한국과 일본 모두 끌어들일 수 있으니 일타 쌍피가 되겠다. 데니스 강도 대한민국과 캐나다이니 역시 쌍피이고. 김동현도 있으니 대한민국은 이제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챙겨준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러니 흥행의 불을 활활 타고 있다. 추성훈의 이적과 맞물려서 우리나라에서 격투기의 중심은 미국으로 옮겨졌다.

일본 단체도 이와 비슷하다. 일본 단체는 미국 단체에 비해 대한민국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기에 판권료를 챙기면서 흥행을 위해 우리 선수들을 많이 출전시키는 편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일본에서 생존해야 하는 단체이니 일본 실정에 맞춰서 운영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 단체가 제대로 굴러간다면 남의 나라를 깊게 살필 필요도 없다. MLB보다 인기가 많으니 야구의 중심은 대한민국인 프로야구와는 달리 국내 대회가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 파이터를 높게 여기지 않는 게 현실이니 격투기의 중심축은 계속 해외에서 이동 중이다. 그러니 해외의 실정을 무시할 수 없다.

현지 상황과는 무관하게 박찬호의 홀드와 추신수의 안타, 박지성의 출장여부가 대한민국 해외 스포츠의 핵심이듯, 대한민국 격투기에서의 포커스는 현지 실정과는 상당히 동떨어졌다. 대한민국 메이저리거가 없더라도 대한민국 프로야구가 있으니 비록 변화야 있겠지만 그래도 야구의 수요는 꾸준할 것이다. 하지만 국내 토양이 약한 격투기는 일반 팬들이 좋아하는 파이터들이 몰락해 해외 컨텐츠에 대한 인기마저 떨어진다면 붕괴는 순식간이다. 방송사가 방영을 하지 않는 이상 극소수의 분야로 전락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포커스와 해외 현지의 포커스가 지독하게 다르면 정서적 이질감이 생겨 해외 컨텐츠에서 팬들이 떠날 수밖에 없다. 이승엽이 빠진 일본 프로야구를 상상하면 되겠다. 일본 단체에서 일본인 선수들만 나오는 이벤트도 좋은 사례이다. 이에 이 분야의 리더들은 일반 팬들이 가질만한 이질감을 해소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타국의 유희를 우리식으로 즐기는 것은 좋다. 이건 나름대로 문화를 수용하는 방식일 수도 있으니 일반 팬의 입장이라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분야를 선도하는 쪽이라면 너무 피상이거나 팬들의 구미에만 맞추면서 표면적인 것에만 포커스를 두면 곤란하다. 크로캅이 출전한 UFC 103회 대회가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방송사에서도 크로캅에 포커스를 맞췄고 글들도 크로캅의 부활이 화두였다. 그러나 그건 미국의 시각과는 한참 떨어진 것이었다. 이미 대전부터 UFC가 크로캅의 부활엔 관심도 없었는데, 국내의 분위기는 크로캅의 부활을 이야기하다가 패한 뒤엔 의외의 일격이라는 엉뚱한 분석으로 변질된 것이다.

미국 팬들은 크로캅에 별 관심이 없었다. UFC에서 수차례 졸전을 보인 그에게 단체도 스타 만들기를 포기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흥행카드도 아니었다. 그날 복귀한 복싱의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는 100만 가구 이상의 실적을 보인 반면, 크로캅이 더블 메인이벤트로 등장한 UFC 103회 대회는 40만 가구 이하의 판매 실적을 기록했고, 특히 이날 경기의 포커스는 비토 벨포트와 리치 프랭클린의 대결이었기에 사실상 크로캅에 대해 관심을 갖은 미국인들은 소수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PRIDE의 2006년 마지막 연말 대회는 일본에서 방영권이 사라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만 방영된 독특한 대회였다. 우리의 포커스가 집중적으로 조명된 상황이었다. PRIDE를 놓고 적잖은 이들이 난파선에서 물이 새는지도 모르고 망하지 않는다고 했었지만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해외 문화를 우리식으로 해석하는 건 팬들의 특권이다. 그러나 팬들은 그만큼 쉽게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다. 월드컵 때의 붉은악마들은 지금은 적지 않은 수가 야구를 보고 있을 것이다. 이 분야의 리더라면 팬들의 기호만 따르기 보다는 그것을 선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지의 실정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