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민수의 라스트라운드]격투가였지만 그보단 링 밖의 일로 더욱 화제가 된 리 머레이(만 32세, 영국/모로코)의 스토리가 영화화된다고 한다. ‘파이’, ‘레퀴엠 포 어 드림’으로 주목을 받았고 미키 루크 주연 영화 ‘더 레슬러’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비롯해 수많은 상을 휩쓴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의 작품으로, 아직 차기작으로 남아있지만 이변이 없는 한 빛을 볼 예정이다. 그는 요즘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블랙 스완’을 진행하고 있다.
리 머레이의 스토리를 각본화 한 영화의 가제는 ‘브레이킹 더 뱅크(Breaking the Bank)’인데 아직 구상 단계이나 그의 범죄행위, 과거, 그리고 격투가로서의 삶이 조망될 것이라 한다. 배경만을 들으면 엉성할 수도 있겠지만 ‘더 레슬러’를 비롯한 그의 작품들을 본다면 이 영화 역시 실망시키진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8승 2패 1무 1무효를 기록한 리 머레이는 전적에 비해서 상당한 악명을 쌓은 악동으로 격투기 선수로서는 무명에 가깝던 2002년에 영국에서 티토 오티즈와의 술집 난투극에서 승리한 후 명성을 떨친 이색적인 파이터이다. 'UFC 38'이 펼쳐진 런던의 한 술집에서 티토 오티즈가 척 리델, 맷 휴즈를 비롯한 동료들과 술을 마시다가 리 머레이와 그의 친구들과 다툼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명성으로는 오티즈에게 한참 미치지 못하던 머레이가 오히려 오티즈의 선방을 피한 뒤 연타를 날려 쓰렸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머레이가 인정사정없이 부츠를 신은 발로 오티즈의 얼굴을 수차례 가격하자 오히려 동료가 말리면서 사건이 종결되었는데, 당시 최강자중 하나인 티토 오티즈를 가볍게 이긴 파이터가 있다는 소문은 미국에도 삽시간에 퍼졌다. 그 명성으로 인해 UFC에 진출, UFC 46회에선 승리를 거뒀지만 다음 경기에선 앤더슨 실바에게 판정패를 당했다.
그의 링 밖에서의 기행은 계속 되었다. 2005년 9월엔 영국의 한 클럽에서 펼쳐진 여성 모델의 생일파티에서 폐를 비롯한 수많은 부위에 칼에 찔리는 부상을 입었고 동맥손상으로 인한 과다출혈로 생사를 오가는 상황이었지만 신속한 응급조치와 수혈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불과 5개월 뒤 머레이는 또 다른 사건을 터뜨린다. 친구들을 규합해 은행 강도로 전업한 것이다. 2006년 2월, 영국 중앙은행에 경찰 복장을 한 채 침입, 5300만 파운드(약 1019억원)를 훔쳐 달아났는데 동료들은 곧 체포되었지만 머레이는 아버지의 조국 모로코로 도망가면서 사건은 복잡하게 진행되었다.
영국과 모로코는 범죄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았기에 양국은 접점을 찾으려했고, 이 과정에서 머레이의 마약류 소지가 드러나면서 모로코에서도 체포할 이유가 생겼다. 그는 범죄 4개월 뒤 모로코에서 잡혔는데 격투기 선수이기에 특별 체포 팀이 조직되었을 정도로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머레이가 영국에서 체포되었다면 조용히 넘어갔을 모로코 내의 마약사건 연루자들은 그가 모로코로 들어와서 체포되었기에 범죄가 발각되었는데 그 숫자는 30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2007년엔 영국과 모로코 간의 협상으로 테러리스트와 맞교환되어 머레이는 영국에 송환될 수도 있었으나 결국 결렬되었다. 머레이는 2009년엔 훈련과 절식으로 체중감량을 했는데 이는 탈옥을 하기 위해서였다. 철장을 쇠톱으로 끊으려다가 발각되기도 했고, 컴퓨터를 들여와서 인터넷을 하거나 심지어 마약까지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는 모로코 감옥에서 간수들을 매수한 덕분이라고 한다. 이런 일들이 적발되면서 독방신세가 되기도 했었다.
머레이는 2009년 6월, 마약으로 인한 복역은 마쳤으나 영국으로 범죄인인도가 될 상황에서 잠시 자유의 몸을 맞았지만 영국과 모로코간의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다시 모로코 감옥에 수감되었다.
감독은 원래부터 영국 런던의 거리를 영화에 담고 싶었던 차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 실린 글을 본 후 격투가로서의 삶, 뒷골목이야기, 은행 강도, 탈옥 등 다소 굴곡이 있는 그의 삶을 영화화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범죄에 대한 미화가 있진 않을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