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100년을 버티기는 어려운 일이라고들 한다. 그에 비하면 엔터테인먼트의 변화는 더욱 빠르다. 이에 한 단체가 오래 버티는 자체만으로도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복싱과 프로레슬링은 그래도 150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고, 초창기엔 팬들의 눈속임을 통해 돈을 버는 이벤트에서 한 쪽은 실전으로, 한 쪽은 더욱 발전한 이벤트로 자리를 잡아갔다면 격투기는 물론 그 원류를 고대까지 소급시키지만 사실상 채 20년도 안 되었다고 봐도 된다. 물론 브라질의 무규칙 격투기와 프로레슬링에서 보이던 실전 스타일은 그 원류라고 볼 수 있고 특히 둘의 결합으로 일본 격투기는 탄생했기에 좀 더 시간을 앞으로 당길 수도 있겠지만 격투기의 실질적인 출발점은 링스, 판크라스, UWF, UWFI, 그리고 UFC 같은 최근의 단체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이들 중 절반 정도만이 남아있다. 워낙 정신없이 변화하는 분야이기에 오래 지속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유행을 생각하면 되겠다. 그 과정에서 갑자기 인기를 끌던 장르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가장 좋은 사례가 80년대 일본 여성 프로레슬링이다. ‘크러쉬 걸스’를 비롯한 여성 레슬러들은 당시 여고생들에겐 우상과 같은 존재였고 시청률은 현재 일본 격투기의 시청률을 상회했다. 그러나 지금 일본 여성 프로레슬링은 지리멸렬한 상태로 전락해버렸다. 세대교체도 미흡했고 다른 장르에 팬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정말 인기는 뜬구름 같은 것이다.
일본 프로레슬링은 안토니오 이노끼의 정책적인 실수에 의해 격투가들에게 프로레슬러가 차례로 제물이 되면서 ‘프로레슬러는 강하다.’라는 명제가 서서히 무너졌고, 사쿠라바 카즈시를 비롯한 몇몇 선수가 예외적으로 활약하긴 했지만 이미 팬들은 격투기에 관심을 갖으면서 방송사에서도 자연스럽게 교체를 하게 되었다. 이에 오늘 날같은 몰락이 오게 된 것이다.
일본 프로레슬링을 잡은 격투기마저도 PRIDE는 방영권을 잃은 뒤 붕괴해버렸고 K-1은 예전과 같지 않다. 이젠 격투기보다 인기가 많은 복싱 세계 타이틀 경기를 앞에 배치한 후 격투기를 방영하지만 복싱 경기보다 시청률이 낮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금년 연말 이벤트는 ‘센고쿠’와 합동으로 진행하면서 팬들의 관심을 끌려고 하며 향후 양 단체가 같이 가려는 상황인데 과연 어떤 식으로 인기를 회복할지 관건이다.
미국에서는 80년대 이후 빈스 맥맨에 의해서 수많은 프로모터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동안 잠잠했지만 2000년 이후 WCW와 ECW가 망한 뒤 WWE의 독주가 지속되자 WWE의 경영상태는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지만 프로레슬링 전체 시장은 줄어들었다.
격투기에선 UFC가 줄곧 적자를 기록하다가 2005년부터 반전을 이룬 뒤, 최근엔 눈부신 약진을 하고 있다. 그와 달리 라이벌을 표방하던 EXC, BODOG, IFL, 어플릭션 등을 비롯한 단체들은 적자누적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사라졌다. 이제 스트라이크 포스라는 단체가 표도르를 영입해 기존의 지나 카라노를 비롯한 스타들을 이끌고 UFC에 맞서려고 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살펴본다면 단체들의 흥행은 참으로 손바닥 뒤집듯 빨리 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것이고. 물론 단체를 이끌다가 망하더라도 다른 일을 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 큰 손해임은 분명하다.
그러니 단체를 이끄는 이도 그렇게 인생이 편한 건 아니다. 성공보다 실패가 많은 분야가 이미 역사적으로 입증이 되어왔으니까. 선수들도 정상이 아닌 이상 힘들 듯, 프로모터도 정상에 서야 한다는 압박이 큰 사람들이다. 보기엔 강자들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황제 같지만 실제론 방송사나 스폰서에겐 힘도 제대로 쓰기 어려우며 실패의 확률이 매우 높은 회사의 운영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