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민수의 라스트라운드] 투기(鬪技) 선수들은 나라나 지역을 불문하고 사회적으로 어려운 층이 많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분야는 누구나 쉽게 할 수는 없기에 상대적으로 진입이 어려운 반면 투기(鬪技)는 그다지 여유롭지 않은 계층의 젊은이들이 몸 하나 믿고 뛰어드는 경향성이 크다. 골프와 같은 분야는 어느 정도만 해도 지도자를 비롯, 생계를 영위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가 있는 반면 투기(鬪技)는 현실적으로 고단한 경우가 많으므로 경제적 여유는 이후 결과에 있어서도 많은 차이를 만들어준다.
몸 하나만 믿고 투지를 불태우는 젊은이들을 그가 태생적으로 타고난 민족이나 국가적인 특징에 바탕을 두고 색깔을 입히는 작업을 개인적으론 선호하진 않아왔다. 주로 일본 선수들이 이런 구도에서 ‘절대 악’으로 그려졌으나 사실 그들도 자국에선 그렇게 밝은 미래가 보장된 생은 아니다. 그러나 어쩌랴, 일반적으로 한-일전은 마치 전쟁처럼 여겨지며 ‘도쿄 대첩’이니 ‘일본의 침몰’, ‘후지산이 흔들린다.’ 같은 원색적인 단어로 포장되어왔으니까.
일본에게 패해 준우승 한 야구대회 WBC에 대해서 아쉬움을 피력하는 이들이 많았다. 물론 일본 우익에서 보인다는 역사인식에 대한 몰이해는 참으로 어이없긴 하지만 젊은 선수들이 그런 의견을 지녔는지도 알 수 없을 진데 마치 동일선상에서 ‘얄미운 일본인’으로 보는 건 논리적인 모순이 있지 않나 싶다.
이번 ‘무한도전-복싱특집’은 이런 현실에 경종을 울린 수작이다. 탈북자 출신 현 WBA 여성 패더급 챔피언 최현미의 2차 방어전을 앞두고 한일전은 종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려졌던 것이다. 평소 같으면 상대인 일본 선수는 반드시 꺾어야 하는 악당으로 그려졌겠지만 그와 달리 어려운 환경에서 주먹 하나만을 믿고 꿈을 향해 달리는 젊은이로 묘사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허름한 체육관에서 훈련하는 일본의 텐고 쓰바사는 여유가 없는 현실에 이미 고인이 된 아버지와의 불화를 솔직하게 말했고 ‘무한도전’은 그것을 가감 없이 내보냈다. 이것이야말로 엉뚱한 색깔론보다는 휴머니즘이라는 진실이 통하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화려한 영상미학덕분에 일반 팬들은 고전적인 한일전의 수사법보다는 인간이라는 본질에 집중했다. 그런 상황에선 승패는 부차적인 의미였다.
우리나라의 딜레마도 사실 이런 부분이다. 최홍만이 아케보노를 이김으로서 천하장사가 스모 챔피언을 이겼다는 카타르시스는 우리나라에서 K-1이 약진했던 원동력이었다. 이는 매니아들을 넘어 일반 시청자들이 유입되는 전기를 마련했다. 허나 최근 최홍만의 부진,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선수들도 일본과의 라이벌전에서 대부분 패함으로서 일반 팬들은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보단 우리가 일본을 이기는 분야로 관심을 돌렸던 것이다.
허나 이걸 생각해보자. 운동을 해온 젊은이들이 일본 우익의 성향을 지녔다고 볼 수도 없는데 이들을 국가적인 대리전을 수행하는 이들로 만드는 건 그다지 온당치 못한 식견이 아닌가 싶다. 대한민국 국민이거나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면 억울해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도 다른 이들을 태생적인 특성 때문에 그런 잣대로 재단하면 똑같은 이가 될 뿐이다.
이젠 민족과 국가라는 색깔론을 넘어 선수들의 노력이란 이면을 보자. 이들은 몸 하나만 믿고 모든 것을 걸었다는 공통점을 지닌 사람들이다. 승자에겐 환호를 보내고 패자에겐 격려의 박수를 안겨주자. 연패를 했다고 위기이니 몰락이니 하는 엉터리 기사는 점점 설 곳을 잃게 만들고 선수를 인간적으로 조망하고 이제 내려가는 길을 가는 옛 스타에겐 고마움을 표시해주자. 이런 것이야말로 스포츠의 본질이며 ‘무한도전’이 알려준 투기(鬪技)의 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