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가 허정무 감독의 후임으로 대표팀을 지휘할 새 사령탑에 국내 지도자를 선임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12-13명의 전현직 K리그 감독들을 후보자로 선정, 다음주중 선임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회택 부회장 겸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지난 7일 오후 기술위원회 회의를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와 같이 밝히는 한편 차기 대표팀 감독에게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까지 지휘봉을 맡기겠다는 뜻도 밝혔다.
결국 앞으로 4년간 한국 축구 대표팀을 이끌고 험난한 항해를 펼칠 선장을 단 일주일 만에 선임하겠다는 얘기다.
이번 축구협회의 신임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은 분명 선후가 뒤바뀌어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준비과정과 본선에서의 대표팀 및 대표팀 전술 운용에 대한 차분하고 냉정한 평가의 과정은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업적에 묻혀 사실상 생략됐고, 단기적으로는 내년 카타르 아시안컵, 장기적으로는 4년 후 브라질 월드컵을 대비해야 하는 대표팀에 어떤 능력을 지닌 지도자가 필요한 지에 대한 명확한 파악 없이 '국내파 전현직 K리그 감독 가운데 한 명'이라는 원칙을 세운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회택 기술위원장은 새 대표팀 감독이 깆추고 있어야 할 조건에 대해 '축구 지식과 철학은 물론 리더십과 그동안 쌓아온 경험 및 경력'을 기본적인 조으로 내세우는 한편 차기 감독을 국내파로 정한데 대해서는 "허정무 전 감독이 국내 지도자로서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에 오른 업적을 높이 사, 모든 기술위원들의 동의하에 국내 지도자 중에서 차기 감독을 선임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을 했다.
또한 개인적인 견해이기는 하나 감독에게 필요한 능력 가운데 무엇보다 리더십과 통솔력이 중요하며, 허정무 전 감독이 2000년 올림픽 대표팀 감독 시절 발굴했던 박지성, 이영표, 김남일 등이 현 대표팀의 고참급 선수로 성장해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은 허 전 감독 뿐이었다는 설명과 함께 이전의 외국인 감독들이 리더십과 통솔력 면에서 실패했던 사례를 들어 국내파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게 됐다는 설명까지 이어갔다.
하지만 이와 같은 분석 역시 축구협회 내부의 면밀한 분석의 과정을 거친 결과도 아니고 축구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한 결과도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 위원장의 설명에서도 드러나듯 '허정무 감독이 국내파로서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했으니 이제 국내파 감독이 대표팀을 맡아 장기적으로 이끌어도 될 때가 됐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들이 결국 현재와 같은 결정을 이끌어낸 주된 근거가 된 셈이다.
그러나 최근 한 국내 대형 포털사이트에서 실시한 인터넷 투표에서는 허정무 감독의 후임으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는 응답이 전체 약 50%로 가장 많았다. 또한 허정무 감독이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에는 성공했으나 그가 조별예선 과정이나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구사한 전술과 용병술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높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와 같은 목소리는 단순히 일반 네티즌들만의 목소리가 아니라 소위 축구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포함된 것이었다.
축구협회가 과연 이와 같은 여론을 새 대표팀 감독 선임 기준을 정하는 과정에서 고려했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축구협회가 국내파 감독이 목표로 했던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했으니 그 과정에서 범했던 잘못이나 실책은 모두 덮고 넘겨도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당장 약 6개월 후 50년만의 아시안컵 우승에 도전해야 하는 대표팀에게 새 감독의 선임은 분명 시급한 문제다. 그러나 풍부한 논의와 면밀한 검토 없는 대표팀 감독의 졸속 선임은 한국 축구의 시계를 또 다시 거꾸로 되돌릴 위험이 높다.
따라서 축구협회는 국내파 지도자에게 다시 대표팀 지휘봉을 맡기겠다는 원칙이 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최소한 12-13명에 달하는 후보자들에 대한 좀 더 면밀한 검토와 논의를 위해 시간을 좀 더 충분히 가질 필요가 있다.
만약 다음달 중에 있을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 기념 대표팀 평가전 때문에 신인 사령탑 선임을 서두르는 것이라면 차라리 남아공 월드컵의 주역인 허정무호의 코칭 스태프를 그대로 평가전 당일만 벤치에 앉히는 방법도 고려해봄직 하다.
앞으로 4년 동안 한국 축구 대표팀을 이끌어 갈 사령탑을 불과 일주일 만에 '뚝딱' 정해버리는 일은 최소한 없어야 한다. 현재 대표팀에 필요한 최적의 지도자를 선택하는 일은 정말 신중하게 해야 한다.
축구협회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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