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의 신임 대표팀 감독 인선 문제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왔다.
당초 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새 대표팀 사령캅의 선임 기준으로 50대 연령의 국내파 전현직 K리그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을 제시하고 이에 따른 인선 작업을 펼쳐왔으나 조중연 축구협회장이 지난 15일 한 행사장에서 외국인 감독의 영입 가능성을 열어두는 발언을 한데다 기술위원회에서 유력 후보로 올려 두었던 당사자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줄줄이 대표팀을 맡지 않겠다는 의사를 피력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충분히 예견됐던 상황이었다.
애시당초 축구협회 기술위원회의 일처리가 합리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 대표팀 감독 선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선 자료도 없이 1-2주 안에 새 감독을 뽑겠다고 나선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말이다.
기술위원회는 12명 안팎의 국내파 전현직 K리그 감독 가운데 한 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하겠다는 원칙을 만장일치로 확정하고 발표했지만 그런 선임 원칙이 정해지게 된 근거를 대는 대목에서는 그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국내파 감독인 허정무 감독이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뤄낸 성과만을 내세웠을 뿐 지도자로서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에서는 '리더십'만을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표팀 감독을 맡을 정도의 위치에 있는 지도자라면 리더십은 기본이다.
기술위원회는 새 대표팀 감독의 모습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후보자의 축구 철학이라든지, 또 그런 축구 철학을 바탕으로 어떤 스타일의 축구를 펼치는 지, 그리고 그와 같은 스타일의 축구로 최근 어떤 성적을 거뒀는지 등등 후보자의 축구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했지만 기술위원회의 새 사령탑 선임기준에 그런 덕목은 찾기 어려웠다.
어차피 이제 새 대표팀 사령탑 인선에 관한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현재 일부 기술위원들은 조중연 축구협회장의 외국인 감독 인선 가능 발언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와 같은 상황에서 스스로 바보가 된 느낌을 갖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일처리의 순서를 무시하고 단기간에 대표팀 감독 인선을 밀어붙이려 했던 기술위원회 구성원들 스스로 부터 반성이 필요하다.
이와 이렇게 된 거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일처리 순서를 지켜가며 국내파 감독이든 외국인 감독이든 영입작업을 벌이면 된다. 시간이 좀 걸린다면 이달 말이 아니라 다음달 까지라도 신중하게 선임 작업을 벌이면 된다.
축구협회에서는 당장 다음달에 있을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 새 사령탑을 벤치에 앉히고 싶겠지만 이날은 허정무 전 감독이 벤치에 앉는 것도 나쁘지 않다.
허 감독이 당초 목표로 했고, 온 국민이 원했던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을 달성했지만 그라운드에서 팬들과 작별인사를 나눌 기회를 갖지 못한 만큼 한국이 원정 월드컵 16강을 결정지었던 상대인 나이지리아와 리턴매치를 벌이는 이날 허 감독과 그를 보좌했던 코칭스태프들을 벤치에 앉혀 팬들로부터 진정한 축하와 격려를 받는 기회를 줘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축구협회는 새 대표팀 사령탑 선임을 위한 시간을 좀 더 벌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축구협회는 새 대표팀 사령탑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지에 대해 그 원칙을 정함에 있어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한 허정무호와 허정무 감독의 활약상에 대해 면밀한 분석부터 시작해야 한다.
허 감독이 남아공에서 뭘 잘했고 뭘 잘못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대표팀에게 어떤 부분이 보완되어져야 하는지 구체적인 분석자료를 만들어 내고 그에 기초해 새 감독의 선임 기준을 발표해야 한다.
이제야 말로 어지럽게 헝클어져 있었던 일처리 순서를 바로 잡을 때다. '포스트 허정무'에 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허정무호와 허정무 감독에 대한 평가가 최우선 선결 과제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 있어 뒤늦게나마 외국인 감독의 선임 가능성을 열고 기술위원회에 그와 같은 바람을 전하고 한편으로는 대표팀 감독 인선 기간을 늘려잡은 조중연 축구협회장의 판단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고 여겨진다.
이번 결정에 관한 진짜 배경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조 회장이 팬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소통'이라는 부분에 있어 꽉 막혀있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