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숙적 일본과의 맞대결을 3-1 역전승으로 장식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동아시아대회 일정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국내파 선수들을 위주로한 동계 전지훈련 일정을 모두 마감했다.
남아공에서의 현지 적응훈련과 스페인 말라가에서의 평가전, 그리고 일본에서 열린 동아시아대회에 참가하는 동안 허정무호는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경험을 했고, 그 결과 해외파 선수들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 가운데 어떤 선수들이 오는 6월 남아공 월드컵에 나설 최종 엔트리에 들 수 있을지에 대한 윤곽이 어느 정도는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월드컵 최종 엔트리는 감독이 구상하는 팀 컬러에 부합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찾아야 하고 그 최적의 조합을 가동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플랜 A'에 문제가 생겼을 때 '플랜 B' 내지 '플랜 C'를 수행할 수 있는 선수들이 뽑혀야 하는 까닭에 언제나 마지막 3-4명의 선수 선발을 두고 감독은 최종엔트리 제출 시한 직전까지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허정무 감독은 얼마전 인터뷰에서 다음달 3일 런던에서 있을 코트 디 부아르와의 평가전 엔트리가 사실상의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가 될 것이라고 말해 최종 엔트리 조기 확정에 대한 뜻을 내비쳤지만 마지막 3-4명의 선발을 두고는 최후의 순간까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허정무 감독의 고민은 지난 1개월여 동안 실시한 전지훈련과 평가전에서 드러난 대표팀의 몇 가지 딜레마에 기인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 딜레마 가운데 가장 우선적인 부분은 중앙 수비 조합의 문제다. 허정무호가 선호하는 포메이션인 4-2-3-1 포메이션에서 팀 수비의 중심을 잡고 팀 전체에게 안정감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수비의 안정이 필수고, 그 가운데서도 2명의 중앙 수비수가 수비 안정의 핵심이다.
현재 한국 대표팀의 중앙 수비수 후보들(조용형, 강민수, 김형일, 황재원, 이정수, 곽태휘, 곽희주 등)은 각자 나름대로의 재능을 지니고는 있으나 경험 부족 등 각자가 지닌 약점도 확연해 본선 무대에서 안정적인 활약을 기대하기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일각에서는 한 소속팀에서 뛰고 있거나 뛰었던 선수들로 조합을 이뤄 반복적인 훈련을 실시한다면 단기간에 수비조직력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특정 선수들의 개인적인 호흡에 팀 전체의 운명을 맡기는데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허정무호의 두 번째 딜레마는 부상 선수 내지 부상에서 복귀한 선수들의 선발 문제다. 현재 대표팀은 주축 선수인 박주영이 부상중이고 기대를 모았던 '왼발의 달인' 염기훈도 피로골절로 한동안 그라운드에 설 수 없다. 또한 오랜 부상에서 돌아온 '골 넣는 수비수' 곽태휘는 이번 동아시아대회에서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돌아왔다.
허정무 감독으로서는 이들의 과거 활약상을 믿고 대표팀에 뽑을 수도 있겠지만 자칫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지난 2006 독일월드컵 당시 한국 대표팀을 맡고 있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부상에서 회복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송종국을 논란 끝내 최종엔트리에 뽑았지만 정작 본선 무대에서 제대로 활용해보지 못했던 사실을 상기해 본다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마지막으로 김보경, 박주호, 이승렬 등 이번 겨울 전지훈련을 통해 급성장한 '젊은피'들의 선발 문제도 엔트리 확정을 둘러싼 에 허정무호의 딜레마 가운데 하나다. 당초 이들의 대표팀 내 위상은 '교육생' 내지 '견습생'에 불과했지만 불과 한달여 만에 이들은 선배들과 엔트리 경쟁을 펼칠 수 있는 선수라는 인상을 심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개월여간의 전지훈련기간 동안의 활약만을 놓고 볼 때 말이다.
특히 7년만의 한일전 승리를 이끈 김보경은 '제2의 박지성'의 탄생을 기대해도 좋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김보경이 최종 엔트리에 선발 된다면 기존의 발탁이 유력시 되던 선배 미드필더들 가운데 누구 한 명은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
이밖에도 엔트리 확정에 관해 허정무 감독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들의 양과 성격으로 볼때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에서 월드컵 최종 엔트리를 사실상 확정 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 감독이 자신의 말 대로 코트디부아르전을 통해 사실상의 최종 엔트리 명단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
물론 조기 엔트리 확정은 돌발 변수 등에 취약할 수 있지만 본선 상대들의 전력이 객관적으로 한 수 위에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객관적인 전력을 뛰어 넘는 '플러스 알파'를 만들어내는데 좀 더 나은 해답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