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후반 시애틀 매리너스의 알렉스 로드리게스, 뉴욕 양키스의 데릭 지터와 함께 메이저리그 3대 유격수로 이름을 떨쳤던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형식적으로 보스턴 레드싹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은 후 레드싹스 선수로써 은퇴를 선언했다.
1997년 AL 신인상 출신의 가르시아파라는 1999년과 2000년 연속으로 타격왕을 차지하며 4할 타율에 도전할 수 있는 타자로 평가받으며 전성기를 보냈다. 그러나 가르시아파라는 2004년 시카고 컵스로 이적한 이후, LA 다저스, 오클랜드 에이스등에서 선수생활을 했으나 과거의 기량을 되찾지 못하고 결국 은퇴를 결정해야만 했다.
야구팬들에게 가르시아파라가 보스턴 시절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한 주된 원인은 계속되는 부상탓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야후 스포츠의 칼럼니스트 스티브 핸슨은 가르시아파라의 계속되는 부상이 약물 복용과 연관이 있을 것임을 암시했다.
야후의 메이저리그 편집장인 스티브 핸슨은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32살의 젊은 나이에 급격히 쇠락한 이유에 대해서, 가르시아파라가 젊은 시절에 약물복용이라는 잘못된 선택이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핸슨은 가르시아파라가 미첼 리포트에 이름이 오르지 않았고 발코 스캔들과도 연관이 없지만, 구단 행정직원들, 야구 기자들, 그리고 선수들 등 야구계의 많은 사람들이 노마의 보스턴 시절 성적향상 약물사용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야구계 인사들이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약물을 사용한 선수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마이너리그 시절의 노마가 호리호리한 체격을 가진 유격수였는데 1996년 9월, 메이저리그로 콜업 되기 전 43경기에서 16개의 홈런을 쳤을 때는 노마의 체격이 확연하게 변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마 가르시아파라는 다음 시즌인 1997년 30홈런, 11개의 3루타, 44개의 2루타, 209개의 최다안타로 올스타에 선발되며 신인상과 실버슬러거를 거머쥐었고, 풀타임 2번째 시즌인 1998년에는 택사스 레인저스의 후안 곤잘레스에 이어 아메리칸리그 MVP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일약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차세대 대형 스타플레이어로 떠올랐다. 그 이후 가르시아파라는 3년간 2번의 타격왕을 차지하며 놀라운 성적을 냈다.
핸슨은 2001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 표지를 장식한 가르시아파라의 사진을 보면 벌크업 된 그의 몸을 볼 수 있으며, 맥과이어, 본즈, 에이 로드, 매니 라미레즈등 약물 복용 선수들과 같은 시대에 플레이한 것을 상기했다. 2001년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의 허리 부상으로 시즌 21경기에만 출전한 노마가 02년과 03년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2004년 컵스로 트레이드 된 이후에는 가르시아파라가 통산 14번이나 DL에 오를 만큼 부상이 일상적으로 발생했으며 29살 이후로 풀타임 시즌을 기록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가르시아파라가 작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지와의 인터뷰에서 유전학적인 원인으로 인해서 그의 신체결합조직이 근육수축을 적절하게 반복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의 아버지와 여자동생도 같은 병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가르시아파라의 부상이 너무 자주, 이상한 방식으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의문이 있다고 주장했다.
핸슨은 보스턴 시절의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매우 친절하고 상냥한 매너를 가진 선수였기 때문에 약물복용등과 같은 심각한 이슈에서 비껴 나갈 수 있었으며, 보스턴 시절 가르시아파라가 신체를 벌크 업 시킬 수 있었던 이유가 약물복용으로 인한것인지, 보스턴을 떠난 이후에 주기적으로 부상이 발생한 이유가 무엇인지 등에 관련된 비밀은 가르시아파라가 은퇴한 이후에도 간직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핸슨은 가르시아파라가 은퇴한 단 한 가지 이유는 건강하지 못한 신체 때문이며 그 원인을 완전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노마 가르시아파라 뿐이라고 매듭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