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찾아뵙는 'Zoom in 블로거'입니다.
겨울의 막바지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2월 13일, 'Zoom in 블로거' 첫 대면 인터뷰에 대한 기대감으로 크르 님을 만났습니다. 매일 레슬링 기술이나 경기 주요 장면들을 GIF 파일로 정성스럽게 만들어 올리는 레슬링 블로그의 주인공. 보랏빛 마스크 썸네일과 '-GIF-'로 시작하는 제목으로 블스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레슬링 마니아. 우락부락한 외모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거구이지 않을까 하는 첫 번째 상상, 의외로 매우 왜소한 오타쿠 풍이지 않을까 하는 두 번째 상상 모두 크르 님을 만나는 순간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앳된 외모에 해맑게 웃는 크르 님은 오히려 귀여운 막내 동생 이미지더군요.^^ 어디에도 거친 레슬링에 열광하는 '주식회사 크르릉(http://japcho0731.egloos.com/)의 대표이사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GIF 공작에 열 올리는 온라인 속 세계와 달리 실제로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꿈꾸고 있다는 크르 님과의 즐거웠던 두 시간을 이곳에 옮깁니다.
레 슬 링 홀 릭
A. 블로그를 시작한 건 2007년 1월 5일입니다. 이제 1년이 조금 지났어요. 처음에는 그냥 일기를 쓴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GIF 파일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레슬링 블로그가 되었습니다. 레슬링은 초등학교 때 할머니 댁에서 우연히 TV로 경기를 본 후 좋아하기 시작했고 중학교 때 iTV라는 채널을 통해 경기를 보면서 본격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지금은 방학이기 때문에 하루 3시간 정도 포스팅하는데 시간을 쏟고 있어요. GIF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3시간 정도는 필요하고, 하나의 이벤트를 다 보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5시간 정도 필요한 셈이에요. 경기 관련 포스팅 말고 선수나 단체를 소개하는 포스팅은 5시간 정도 걸려요. 지금은 방학이라 가능한 거고 학기 중에는 아침에 포스팅 하나 해놓고 학교에 달려가곤 해요. 강의 시간 임박해서 헥헥 거리며 도착하는 게 일상이 됐어요.^^ (크르 님은 현재 대학교 2학년생이십니다.)
Q. 그 많은 자료는 어디서 구하나요?
A. 국내에서는 TV중계 외에는 보기도 힘들도 자료 구하기도 힘들어서 해외 사이트를 많이 뒤져요. 저만 알고 있는 사이트가 몇 개 있어요. (궁금하신 분은 크르 님께 직접 연락해보세요.^^) 일본 자료는 DVD로도 많이 보는 편이구요. 이렇게 보고 남기고 싶은 장면은 GIF로 만들어서 제 자료로 따로 보관하는 거죠.
Q. 왜 레슬링을 좋아하나요?
A. 레슬링은 각본이 있는 쇼입니다. 하지만 그 쇼는 거짓이 아니에요. 설득력 있는 쇼이고 그래서 얼마나 설득력 있게 경기를 진행하는 가가 중요합니다. 스포츠라기보다 고객 만족에 힘쓰는 스포테인먼트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이종격투기는 어떠냐고 묻자) 이종격투기는 일방적인 경우도 많고 제 생각에는 주고받는 재미가 레슬링보다 덜 한 것 같아요. 또 이종격투기와의 차이점을 꼽으라면, 프로레슬링 용어로 ‘접수’라는 것이 있을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위험한 기술을 일부러 받아주는 스포츠는 프로레슬링을 제외하고는 하나도 없거든요. 어떠한 기술이건 받아내고 또 그것을 견뎌서 이겨낸다. 여기에서 나오는 드라마가 바로 프로레슬링 매력의 근본이 아닐까 합니다. 이 이야기가 전제가 되고나서,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상대의 기술을 버텨내고 승리를 쟁취한다던지 하는 이야기로 발전이 된다고 생각해요.
Q. 레슬링 외에 다른 스포츠에는 관심이 없나요?
A. 레슬링에 이렇게 빠지기 전에는 축구와 NBA를 좋아했어요. 리버풀과 유타 재즈를 좋아하구요. 학교에서 축구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해요. 포지션은 디펜스 미드필더.
Q. WWE라면 유명하지만 일본이나 북미인디의 레슬링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다른가요?
A. WWE는 워낙 마니아층이 두텁습니다. TV 중계도 많고요. 그래서 일반 TV 관객을 위한 경기를 하는 편이에요. 때문에 잘생긴 선수에게 승리를 푸쉬해주는 경우도 많아요.
반면에 일본의 레슬링은 돔 위주로 경기를 하기 때문에 WWE와 달리 경기장의 팬들의 반응을 이끄는 흥행(일본에서는 8~9경기가 벌어지는 하나의 이벤트를 흥행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을 준비합니다. 요즘에는 미국의 영향으로 쇼로 특화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요.
북미인디는 굉장히 규모가 작아요. 짐을 빌려서 하는데 보통 2~3천명이면 만원이죠. WWE가 드라마 연출에 신경 쓰고 경기가 부수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에 북미인디는 감정이 격해져 싸운다는 설정 정도만 있을 뿐 경기 자체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북미 인디단체는 ROH입니다.
크르 님이 뽑은 최고의 선수 Best 3
1.크리스토퍼 다니엘스(Christopher Daniels)
TNA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수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창조적인 레슬링을 하는 남자’라고도 불리기도 해요. 그가 하는 레슬링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기만 해도 정말 재미있어요. 그리고 간혹 가다가 가면을 쓰고 ‘카레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때는 전혀 둘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없을 만큼 새로운 레슬링을 하거든요. 이런 점이 제일 좋아하는 레슬러로 크리스토퍼 다니엘스를 꼽게 만든 것 같아요.
2. A.J. 스타일스(A.J.Styles)
역시 TNA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수입니다. 별명인 ‘경이로운 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가 보여주는 움직임은 하나하나가 전부 경이롭지요. 지금은 상당히 찌질한 악역을 소화하는 중이지만, 그 수행능력도 대단해서 제 주위사람들은 전부 ‘경이로운 찌질이’라고도 부르는 선수입니다. 하지만 옛날 모습으로는 언젠가 돌아오겠지 하는 기대를 계속 하게 만드는 선수에요.
3. 코바시 켄타(小橋建太)
현재 일본의 레슬링 단체 NOAH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수로, 열혈과 근성의 레슬러이지요. 그의 경기는 보면 볼수록 계속 뜨거워지며, 진짜 이 사람은 링 위에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레슬러입니다.
1. ROH의 창립이벤트이자 첫 번째 흥행이었던 'The Era of Honor Begins'의 메인 이벤트였던 ‘크리스토퍼 다니엘스(Christopher Daniels) vs 로우 키(Low Ki) vs 브라이언 다니엘슨(Bryan Danielson)의 3자간 경기입니다.
이 세 명은 이 경기로 'ROH 설립의 아버지'로 불렸을 만큼, 재미있는 경기운영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특히 3자간 경기라는 것으로 인해 1:1 경기에선 맛볼 수 없는 돌발상황도 이 경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2. 2003년 WWE에서 벌어졌던 로얄럼블의 커트 앵글(Kurt Angle)과 크리스 벤와(Chris Benoit)의 경기입니다.
이 경기만큼은 취향이 갈리는 프로레슬링 팬들도 이견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경기이지요. 최고의 테크니션들의 경이로운 경기입니다. 프로레슬링 팬이라면 꼭 봐야할 경기라고 생각합니다.
3. NOAH에서 2006년 10월 29일에 열린 KENTA와 마루후지 나오미치(丸藤正道)의 GHC 헤비급 타이틀 매치(http://japcho0731.egloos.com/1123220)입니다.
특이하게 ‘헤비급 타이틀 매치’라는 명칭이 있지만 경쟁자들을 제치고 올라온 두 사람이 그 밑의 체급인 ‘쥬니어 헤비급’이라는 특이점이 있었지요. 2006년 일본에서 벌어졌던 레슬링 경기 중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두 선수 모두 관객을 사로잡는 레슬링, 그리고 경기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레슬링을 했다고 생각해요.
' 크 르 ' 라 는 이 름 의 블 로 거
Q. ‘크르’라는 닉네임과 '주식회사 크르릉'이라는 블로그 제목은 어떻게 정하게 되셨나요? 또 이웃블로거분들은 어떤 분들인지 궁금합니다.
A. 북구 신화에 나오는 '크바시르'라는 인물에서 따온 닉네임이에요. 혹자는 신이었다고도 하고, 아니면 신이 만든 인간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는데,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현자였던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든 점은 지식을 알려줄 때에 그대로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힌트를 줘서 질문자가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방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그런데 '크바시르'가 길고 어렵다고 앞뒤 글자만 따 언제부턴가 '크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크르릉'이라는 의성어에서 따온 줄 아는 분들도 계세요. '주식회사 크르릉'이라는 블로그 제목은, 원래는 창작 블로그를 만들 생각이었거든요. 그래서 회사적 시스템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로 생각했던 건데 지금은 GIF 공장이 되었네요.
이웃블로거들 중 일부는 레슬링 커뮤니티에서 만난 분들이에요. 하지만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레슬링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은 더더욱 많지 않아 대부분은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새로 알게 된 분들이에요. 검색을 통해 들어오시는 분들이 많지요. 다들 성향이 다르고 경기를 보는 관점이 달라서 종종 경기 운영이 얼마나 설득력 있었는가를 두고 논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럴 땐 꽤나 격해요. ^^
Q. 애니메이션 동호회 활동도 하셨던 것 같고, 만화도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림 실력도 상당한 것 같구요.
A.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쪽 활동을 했습니다. 그때도 뭔가 했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질이었는데, 애니메이션이나 만화관련 자료가 훨씬 구하기 쉬웠거든요. 무엇보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아해서 재수생 시절까지도 모임에 나가고 열심히 활동했었답니다. 하지만 블로그를 하고나서는 활동을 병행할 수가 없어서 현재는 유령신세에요. ^^
Q. 2007년 올블로그 신인 블로그 톱30에도 들었습니다. 어떤 기분이셨나요?
A. 신인 블로그 톱30는 그냥 사람들이 많이 오겠구나 하는 느낌이었어요. 방문자가 많아지면 좋긴 하지만 비로그인 악플도 많아지기 때문에 마냥 좋지는 않아요. 입소문으로 오는 분들은 얼마든지 환영이지만요.
Q. 블스에서 알게 된 블로거 중 기억에 남는 분이 계시다면요. 블스에서 알게 된 블로거가 아니더라도 블스 회원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블로거가 있으면 알려주세요.
A. 블로그스포츠에서 여러 가지로 제가 눈팅하는 분들은 상당히 많아요~ 주로 축구 쪽이나 농구쪽 블로그 분들을 눈팅하지만, 덧글달기가 약간 낯설고 무서워서 그냥 보고만 있습니다.^^ 우선 MLB 춘 님의 Pub춘(http://mlbchoon.net/)도 상당히 많이 들르는 곳이구요, 토오루 님의 블로그(http://blog.naver.com/inoue31)도 새로운 글이 올라올 때마다 들어가서 보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시면서 걸리는 것이 아닐까 상당히 걱정되네요. ^^;;
그리고 블로그스포츠 식구는 아니지만, 저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주시는 공국진 형님의 ‘공국진의 이것저것 블로그(http://kkjzato.egloos.com)'는 정말 추천해드리고픈 블로그입니다. 일본 쪽의 레슬링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와 나날이 갱신되고 있는 일본 프로레슬링 쪽의 기사가 정말 매력적인 곳이에요~
Q. 블로그를 하면서 희망하는 게 있으시다면요.
A. 저는 블로그를 통해 레슬링을 알리고 정보를 전달한다는 데 만족하구요. 욕심을 낸다면, 제 블로그로 인해 레슬링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늘어난다면 그 이상 좋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한국 레슬링이 부활의 기미를 보이고 교류가 늘어나고 대항전도 벌어진다면 정말 좋겠어요. 나중에는 레슬링 자료들을 모아 별도의 사이트를 만들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나에게 블로그란 '즐거움' 이다.
즐겁지 않으면 블로그를 하지 않습니다.^^ 이웃들과의 교류, 쌓여가는 노력의 결실인 데이터 베이스, 이 모든 것이 언제나 저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어요~
나에게 레슬링이란 '삶의 방향제' 이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레슬링을 시청함으로 인해서 방향제를 맡는 것처럼 뭔가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됩니다. 물론 절대 따라하면 안되는 것이 레슬링지만 말이에요~^^
나에게 블로그스포츠란 '만남' 이다.
블로그 스포츠를 통해서 새로운 분들과 만나게 되고, 이렇게 직접 인터뷰까지 하게 된 것 같네요. 앞으로도 이렇게 새로운 만남을 블로그 스포츠를 통해서 계속 이뤄나가고 싶어요~
사실 크르 님은 최근 건강이 안 좋아 보름 정도 집에서 요양 중이셨다고 합니다. 뵌 날은 다행히 건강한 소년(?)이었지만 후에 올리신 글을 보니 그날의 외출이 조금 무리가 되신 것 같기도 해 걱정이 되네요. 빨리 건강 회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상상 속의 크르 님을 직접 만날 수 있어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여기에 적지 못했지만 대외적으로 알려져서는 곤란한 크르 님의 비밀도 하나 알아버렸네요.^^ 앞으로 ‘Zoom in 블로거’를 통해 더 많은 블로거 분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인터뷰에 응해주신 크르 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