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나 방송 출연으로 유명한 밥 샙은 격투가이자 프로레슬러이며 전 NFL선수였고 광고모델에 댄스 가수이기도 했다. 그는 겉보기엔 다소 아둔하지만 실제론 경제관념이나 법적인 문제에 밝은 편이다.
밥 샙은 고교시절 미식축구 스타였고 NFL 시카고 베어스에 드래프트 되면서 큰 꿈에 부풀었지만 그걸로 인생이 풀리진 않았다. 1997년 이후 네 시즌동안 팀을 네 차례나 바꿨고 NFL 경기 출장은 단 1회에 그치면서 결국 2000년에 미식축구를 떠나게 된 것이다.
덩치가 큰 밥 샙은 2001년 프로레슬링에 뛰어들었고 탁월한 외모 덕분에 당시 미국 2위 WCW에 발탁되었지만 단체가 WWE에 매각되었고, 훈련생의 입장인지라 고용승계가 되지 못하면서 20대 중후반에 다시 한 번 고민에 빠진다.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낯선 땅 일본의 프로레슬링에 진출한 밥 샙은 외모덕분에 화제가 되면서 새로운 기회를 봤다. 일본 격투기계는 시청률을 위해 격투기 초짜 밥 샙을 외모가 된다는 이유로 손을 내밀었고 그는 덥석 잡았던 것이다.
덩치가 큰 호구가 될 우려가 컸지만 2002년 격투기에 혜성같이 등장한 밥 샙은 일본의 강자 타무라 키요시를 잡았고 입식타격의 전설 어네스트 호스트를 꺾으면서 일약 스타가 된다. 기본기는 엉성했지만 무지막지한 힘으로 몰아붙이는 형태는 마치 메기를 연못에 풀어놓은 느낌이었고 그는 일생 최고의 순간을 만끽했다.
기회가 오면 우왕좌왕할 수도 있지만 그는 놓치지 않았다. 은근히 영리한 머리로 방송에서도 잘 적응하면서 미디어의 관심을 본인에 대한 호감으로 만들었고 이는 일본에서 CF 스타로 등극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의 경기는 높은 시청률을 올렸고 단체에겐 없어서는 안 될 스타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철저한 터라 단체와의 협상에선 다소 강하게 나가면서 가끔 갈등이 있었고 선수의 위에 군림하려던 일본 K-1과는 점점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시장을 잡기 위한 K-1의 움직임이 있으면서 최홍만 선수와 경기가 잡혔고 이는 최홍만 선수를 띄워주려는 의도가 컸다. 밥 샙은 이 경기에서 패하면서 점점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후에도 격투기에 참가했지만 강자 어네스트 호스트를 난타하던 기세는 사라지고 미국 시장 진출전에서 만난 얀 노르키아에게 무너졌으며 바비 래쉴리는 물론 작은 체구의 미노와맨에게도 패할 정도로 몰락했다. 일본측에선 아마추어 레슬러 출신 ‘근육맨 만타로’를 띄우기 위해 밥 샙을 희생양으로 투입시켰으나 복면이 돌아가 시야가 가려지는 통에 의외의 승리를 거두기도 했지만 갈수록 격투가로서의 존재가 약해지는 건 사실이다.
물론 40대 후반의 랜디 커투어도 있지만 기량이 떨어질 나이도 되어갔으며 요즘 그의 주요 관심사는 영화 및 방송활동이기에 뭐라 탓하기도 어렵다. 아놀드 슈왈제네거 출연작인 ‘코난 더 바바리언’의 리메이크 작품에 캐스팅이 되어서 영화에 더욱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 배역 역시 치열한 오디션을 통해 된 것이기에 영화에 대한 열망은 대략 짐작할 만하며 곧 만 37세를 앞두고 있으니 나쁘진 않은 선택처럼 보인다.
어느 정도 명성과 경력도 남겼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자신이 택하는 것이며 적어도 경제적인 면에서는 나쁘지 않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가장으로서 책임에도 충실한 동시에 가족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니 좋은 남편이자 아빠라 하겠다.
사람의 사는 방식은 다양하다. 꾸준한 장인정신도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다방면에서 멀티 플레이어로 활약하는 밥 샙도 세상을 사는 또 다른 좋은 사례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