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걸렸습니다. 이분들을 만난 지 벌써 열흘도 더 지났는데 이제야 정리의 글을 올리게 되네요. 마음 편히 '블로거 인터뷰'를 생각하고 나섰다가 그분들의 지식과 깊이, 관심 범위를 따라가지 못해 내내 조급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를 애태웠던 그분들, 팀블로그 'Yagoora'의 주인공들입니다.
블로그를 하는 스포츠 마니아, 특히 야구 마니아라면 팀블로그 'Yagoora'를 모르는 분은 없을 듯합니다. '야구와 구라의 세계'라는 서브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 팀블로그는 손윤 님을 중심으로 트로츠키 님, 기호태 님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거침없는 필력도 볼 만 하지만 다양한 주제와 각기 다른 글 스타일이 읽는 재미를 더하는 인기 블로그죠.
지난 2월 29일 금요일, 신촌의 한 카페에서 'Yagoora'의 손윤 님, 기호태 님, 트로츠키 님을 만났습니다. 생각했던 것과 같은, 혹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세 분은(생각했던 것과 같은 모습이라면 손윤 님의 트레이닝 복장과 기호태 님의 철학 관련 서적, 다른 모습이라면 트로츠키 님의 낮은 목소리(?)랄까요?) 자리에 앉자마자 '우리 히어로즈' 이야기를 시작으로 무수한 야구 이야기를 쏟아놓으셨습니다. 사실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뵙자 했던 것이었지만 오프 더 레코드가 난무하는 그 분들의 대화를 도저히 날 것으로 정리할 수 없더군요. 필력만큼이나 날카로운 입담이어서 고르고 골라 말랑말랑한 궁금증과 답변들만 정리해 봅니다. 어디까지나 여긴 'Zoom in 블로거'니까요. ;;
블스: 식상한 질문부터 시작할게요. 팀블로그를 만든 계기는 무엇인가요?
손윤 님(이하 손): 보통 이런 말을 하죠. ''야구 팬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정말 야구 팬일까요? 그 말은 저도 잘 안 씁니다. 야구는 '하는' 거잖아요. 팬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야구를 '보고' 있습니다. 저는 보는 야구를 탈피하고 싶었고 블로그를 통해 다양한 야구를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회인 야구계에서 심판으로 활동하는 트로츠키 님의 현장 이야기와 기호태 님의 필력이 서로를 보완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트로츠키 님(이하 트): 저는 티스토리 전에 미디어몹에서 활동했어요. 그때 손윤 님이 티스토리로 불러줬고 그 후 눈 여겨 보다가 팀블로그에도 초대해 주신 거죠.
손: 기호태 님은 MLB 바닥에서 워낙 유명했던 분이라 제가 모셨죠.
기호태 님(이하 기): 제가 친한 척을 좀 했죠. (웃음)
손: 'MLB land'에서도 기호태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어요. 다른 분들은 블로그를 야구 전문 블로그로 쓰고 있었는데 트로츠키 님과 기호태 님은 야구 외에 다른 내용도 블로그에 담고 있어서 팀블로그를 제안하기 좋았습니다.
블스: 팀블로그는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손: 팀블로그는 작년 12월 말부터 시작했어요.
트: 저는 12월 마지막 주에 합류했고.
손: 기호태 님이 늦게 발동이 걸리셨죠.
기: 블로그는 편해야 하는데 제 블로그에는 신변잡기가 없어요. 그래서 팀블로그는 좀 편하게 쓰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트: 미디어몹 때도 그랬고 티스토리도 그랬고 심판일지를 올리는 데 고민이 많았습니다. 다른 심판 블로그와 다르게 쓰려고 애쓰고 있어요. 팀블로그를 하면서 사실 영역이 좁아진 측면이 있거든요. 심판일지는 단순해지기 쉬운데 단순해지지 않으려고 신경 쓰고 있습니다.
블스: 가끔 오프라인 만남도 가지시나요?
손: 빈번하진 않습니다.
트: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되어서 앞으로는 더 힘들 것 같아요. 매년 초에 심판 일을 시작하게 되면 년 중 일요일에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주가 8,9주 정도밖에 안 되거든요.
손: 온라인은 오프라인을 너무 강화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팀블로그하면서는 다른 블로그에 댓글을 의도적으로 달지 않고 메타사이트도 잘 보지 않아요. 트랙백을 걸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 글도 잘 보지 않는 편이고요. 잘못하면 패거리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
패거리즘이 블로거들의 글 이야기로 이어지고, 블로거들의 글에 대한 이야기가 야구 정보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다시 상품으로서의 야구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
트:
기: 미국의 반디 앤 노블스는 한 벽면이 다 야구, 축구 서적인데 말이에요.
손: 우리나라는 야구 소비에 대한 기본적인 토대가 만들어져 있지 않아요. 내가 이것을 구입하면 구단이 더 투자할 것이다, 더 좋은 선수를 데려올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겠죠.
기: 상품으로 포장을 잘 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고요.
트: 스카우팅 노트 같은 책이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어요. 야구에 대한 지식도 일본에서 수입된 엉터리 번역이 많아요. 체화된 지식으로만 내려왔을 뿐, 이론화, 체계화되어 논쟁이 되지는 않고 있죠. 그러니 다 똑같고, 보는 재미가 없죠. 우릴 어릴 때는 아버지와 캐치볼 하던 기억이 있잖아요. 문방구에 배트 사서 마당에서 연습하고 그렇게 하다보니까 재미를 느끼고 매력에 빠졌고요. 예전에는 공터도 있었고, 주거환경도 아담한 집에 마당이 살짝 있는 집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골목에서 풋살도 안되고 야구는 꿈도 못 꾸고.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이제는 농구 정도?
손: 장소도 많이 필요 없고 사람 적어도 할 수 있으니까.
트: 예전에는 학교 운동장에 축구장이 있었고 그 옆에 핸드볼장도 있었는데 요즘 학교 운동장은 축구장 하나에 테니스 코트 하나에요.
기: 움베르트 에코는 남의 부부생활을 훔쳐보고 쾌감을 느끼는 관음증의 일종이라고 했어요. 음악도 악기 하나라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더 잘 이해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요즘 상황은 야구를 직접 하는 건 고사하고, 보는 것조차도 쉽지가 않고, 주로 언론이나 인터넷 게시물을 통한 '담론의 담론'으로 소비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트: 남의 글을 보면 어떤 생각으로 글을 올리는지 대충 알 것 같은데 언어유희만 즐기는 건 아닌지…
블스: 다른 블로거도 영입할 예정이신가요?
손: 그림을 그린다면, 지금은 크레파스와 종이가 준비된 상태랄까요? 뭘 그릴까는 생각 중이에요. 어떤 식으로 그릴 지도 아직 모르겠고요. 만약 영입한다면, 실제 야구를 하고 계신 분, 사회인 야구라도 감독을 하는 분을 영입하고 싶어요.
기: 감독, 기록원, 트레이너?
손: (트로츠키 님, 기호태 님에게) 어떻게 생각하세요?
트: 나쁘지 않죠. 베이스볼코리아 사이트에 칼럼 쓰시는 분들 보면 야구에 미쳐 40년을 보낸 분들도 있어요. 그런 분들 글에는 정이 묻어나죠. 글을 보면서 이거 눈물을 흘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요. 그런 분들 보면 존경스러워요. 그런데 지금 야구 관련 글 쓰는 분들 보면 남 일이라고 쉽게 쓰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까워요.
기: 그런 사이트가 없어지면 안 되는데 말이에요.
손: 10년이 아니라 내일이라도 이 글이 남을 수 있는 글인가 장담할 수 없어요. (웃음)
이 시점부터 역시나 특별한 질문이 없었음에도 이야기는 야구 자료에서 '선데이 서울'로, 기록지와 만화책, LP판으로, 과거를 안아야 미래로 갈 수 있다는 얘기로 이어지다 남대문 전소에 도착했습니다. 도저히 그 속도와 방향을 감당할 수 없어 이야기는 그쯤에서 강제 종료했습니다. ;;
블스: 하루에 얼마나 블로깅에 시간을 보내시나요?
손: 저는 집에서만 블로깅한다는 원칙이 있어요. 예전에는 30분 정도였는데 지금은 1시간 반 정도까지 하는 것 같아요. 년도 같은 건 틀릴 수 있으니까 'MLB.com' 등에서 숫자만 확인하는 정도고 평소에 이런 식으로 쓰면 어떨까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기: 처음에는 2,3시간 씩 걸렸는데 요즘엔 생각이 날 때마다 메모해서 정리해둬요. 사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고, 다해서 1시간 정도?
트: 저는 사진은 별로 없으니까… 가장 오래 쓴 건 미디어몹에서 글 쓸 때, 2005년도 휴스턴과 애틀란타의 디비전 시리즈 4차전 경기가 18이닝까지 진행됐잖아요. 9이닝부터 쓰기 시작해서 3시간 정도 쓴 적이 있었어요. 심판일지 쓸 때는 그날의 인상 등을 중심으로 쓰고요. 팀블로그 하면서 달라진 건, 아는 사람이 블로그에 들어오는 게 무서워요. 그래서 실명 쓰는 거, 리그명 쓰는 거, 프라이버시 침해가 될 만한 내용 쓰는 거 조심하느라 20분이면 쓸 수 있는 걸 새벽 내내 쓰기도 해요.
블스: 시작처럼 식상한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이 팀블로그의 지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트: 블로그는 웹상에 기록으로서의 의미, 기사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인정받기 위해서라고 할까요?
손: 자기 허영이 있겠죠.
트: 우리가 생각하는 지향점을 타인에게 인정받고, 납득시키고, 설득시키고, 공유하고 싶은…
손: "이건 몰랐지?" 하는 측면이 있죠. 그래서 더 완벽을 기하려고 하고 있고요. 난 이만큼 알고 있다, 하는. (웃음)
이날, 한쪽 귀퉁이에 연탄이 잔뜩 쌓여있는 포장마차에서 세 분의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그런데 워낙 꺼리셔서요.^^ "분위기만 전할 정도로, 얼굴은 거의 안 나오도록 찍을게요" 했지만 어떤 식으로든 노출이 되는 일이라 결국 사진은 싣지 않았습니다. 세 분과 참 어울리는 분위기였는데 말이지요. 쉬지 않고 얼마나 오랫동안 야구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궁무진한 화제를 안고 계셨던 세 분, 만나뵙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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