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 선수들의 경우 다른 분야에 비해 기회가 많지 않는 터라 돌아보면 아쉬운 순간이 참으로 많다. 데니스 강을 떠올리면 앨런 벌처와의 경기에서 잘 하다가 막판 기회를 내준 뒤 졌고, 마이클 비스핑에게도 제대로 대응하다가 순식간에 무너진 뒤 UFC에서 퇴출된 일이 가장 아쉽다. 표도르는 파브리시오 베흐둠에게 너무 쉽게 들어가다가 패한 뒤부터 꼬이기 시작했으며 결국 최근 3연패 및 재계약 갱신이 되지 않는 굴욕까지 겪고 말았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위기관리가 성공에 있어 핵심인데, 올라갈 때는 파죽지세일 수도 있지만 한 번 기세가 꺾인 뒤 어떻게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다.
코리안 파이터 벤 헨더슨에게도 위기도 있었다. 2009년 10월 도널드 세론을 꺾고 잠정 챔피언에 올랐고 2010년 1월엔 제이미 바너를 서브미션으로 잡으면서 WEC 라이트급 타이틀을 통합해 정상에 섰지만 그가 속했던 WEC는 UFC의 자매단체이나 하위리그에 가까웠는데, 양대 단체를 통합하자 딱 하나 겹치는 라이트급 선수들만 넘쳐나게 되면서 더욱 복잡한 생존경쟁의 구도로 던져지고 말았다. 그래도 1차 방어전에서 도널드 세론을 다시 한 번 잡으면서 멋지게 타이틀을 지켰고 경쟁력을 증명했으나 WEC의 마지막 챔피언으로 남을 수 있는 기회에서 앤소니 페티스에게 막판 뒤집히면서 패했고, 멋진 경기였지만 영화에서 볼 법 한 철장을 딛고 차는 킥에 희생당하면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언제나 그렇듯, 내려간 길에서 어떻게 반등하느냐가 관건이다. ‘가장 멋진 킥이라는 찬사’의 희생양이던 헨더슨은 좌절하지 않고 마크 보첵을 꺾으면서 부활의 날개 짓을 한 뒤 이번엔 열세라고 평가되던 짐 밀러와의 경기에서 이변을 낳았고 양 단체의 통합으로 선수층이 가장 두터워진 라이트급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알린 것이다.
헨더슨은 첫 라운드부터 우세를 점했고 2라운드에선 타격에 밀리지 않고 중간에 위기도 있었지만 부드럽게 탈출해 역시 자신의 라운드로 이어갔다. 3라운드에선 상대의 주먹에 잠시 쓰러지기도 했지만 유리한 포지션을 취했고 결국 상대의 체력까지 저하시키면서 3:0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30-27, 29-28, 30-26으로 거의 전라운드를 지배했다는 심판들의 평가도 얻어내면서 지옥과 같은 라이트급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인정받았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선한 인성을 드러냈고,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으면서 새로운 코리안 파이터로서도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그의 이런 행보를 대한민국에서 뭔가 이득을 취하려는 것으로도 해석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그러기엔 대한민국이 그에게 줄 수 있는 부분은 사실 많지가 않다. 일본 단체에겐 대한민국이 오히려 자국보다 더 큰 이득을 준 경우도 있지만 미국의 UFC로 볼 때 대한민국에서 얻을 수 있는 바는 생각보다 많지 않기에 만에 하나 헨더슨의 의도가 지극히 사악하다 가정하더라도 별로 이득도 없을 것이며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철저한 오판이다. 그저 자신의 혈통인 대한민국이 반갑고 그 나라에 애정을 표현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뭐가 되든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만 봐도 된다. 그는 정서적으로 가까운 편이며 다소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음에도 지극히 밝기에 큰 힘이 된다. 게다가 좌절하지 않고 위기에서 벗어나 자신의 영역을 개척한 것만으로도 우리 시대의 영웅 자격은 충분하다.
철장 안에서의 삶은 현실이라는 곳과 유사한 면이 많다. 고도로 농축되었고 집약적이긴 하지만 어려움을 딛고 올라선 인간의 드라마는 누구에게나 큰 감동을 줄 수 있다. 그런 일을 코리안 파이터 벤 헨더슨이 했다는 것에 더욱 반가울 뿐이다.
파워칼럼 해설위원/성민수 라스트라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