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가 담겨 있는 영화는 적지 않다. 스포츠 에이전트의 이상적인 세계를 그린 ‘제리 맥과이어Jerry Maguire’라든지 미식축구의 박력과 열정을 멋지게 묘사한 ‘애니 기븐 선데이Any Given Sunday’와 같은 영화들도 있지만, 결국은 ‘메이저리그Major League’나 ‘더 팬The Fan’과 같은 야구를 소재로 하는 영화가 주류를 이루는 면이 있다.
이는 대중 상업 영화가 가장 발달한 나라가 역시 미국인지라 미국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인 야구나 미식축구가 자주 등장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프리미어리그 아스날의 광적인 팬의 일상을 담은 ‘피버 피치Fever Pitch’도 미국으로 건너가면 금새 보스턴 레드삭스의 팬이 되고 마는 식이다. 이렇게 미국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를 스크린을 통해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적지 않은데 비해, 축구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물론 갈락티코를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었던 ‘레알Real’, 한국 축구 영화의 시금석의 의미가 존재하는 영화 ‘비상’과 같은 작품이 존재한다고는 해도, 확실히 축구를 소재로 한, 축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주는 영화를 찾는 건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제목부터 매우 강렬한 축구영화가 하나 있다. 이름하여 ‘훌리건스hooligans’.
이 영화는 2005년 9월 독립영화로 영국과 미국, 호주 등지에서 개봉한 렉시 알렉산더 감독의 작품이다.(참고로 이 알렉산더 감독은 독일인 여성으로, 킥복싱과 가라데 세계 챔피언 출신이란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웨스트햄의 홈경기장 업튼 파크가 위치한 거리의 이름인 ‘그린 스트리트Green Street’라는 제목으로, 미국과 호주에서는 ‘그린 스트리트 훌리건스Green Street Hooligans’의 제목이 간판에 걸렸는데, 그렇지만 역시 ‘훌리건스’라는 단순하고 인상적인 제목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하버드대학에 다니는 한 미국인 청년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리고 갑자기 생긴 돈으로 누나가 살고 있는 영국 런던을 여행하며 생긴 일을 담고 있다. 단지 매형과 그의 남동생이 웨스트햄의 광적인 팬인데다 극렬한 훌리건이란 점에서 문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지금 이 영화의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최근 발표된 잉글랜드 칼링컵 일정을 보면, 8월 25일 열릴 2라운드에서 프리미어리그의 웨스트햄과 3부리그의 밀월이 업튼 파크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2005년 4월 2부리그 챔피언십에서 만나 1대1 무승부를 기록한 이후 4년 5개월만에 열리는 라이벌의 대결이다.)
사실 두 팀은 지난 50여년간 같은 리그에 머무른 적이 거의 없이, 10번의 경기도 치르지 않은 라이벌이라 하기 이상한 관계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런던 시내에서 바로 이웃에 위치한 두 팀은, 19세기 후반 철강노동자들이 팀을 이루던 시절부터 강한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었고, 이 팀들을 지지하는 극렬팬들의 과격함은 악명이 높으며, 특히 1976년 기차 안에서 벌어진 두 팀의 과격하고 조직적인 팬들(정확한 표현으로는 ‘firm’)의 충돌로 인해 밀월팬 한 명이 기차에서 떨어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는, 돌이킬 수 없는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고 만 것이다.
영화의 대사를 빌리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그 이상의 관계’라고 묘사되는 웨스트햄과 밀월의 칼링컵 경기, 이미 일정 발표 후 현지 경찰도 초긴장 상황이라는 이 경기가, 영화의 내용은 과장이란 것을 확인하며 아무 불상사없이 잘 마무리되길 바랄 뿐이다. 국내에서 TV로 이 경기를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점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훌리건스, 이 영화는 사실 그리 강추할 만한 작품은 아니다. 특히 시종일관 이어지는 폭력적인 장면도 거친 대사들은 청소년관람불가 딱지가 붙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프리미어리그의 그늘진 면, 런던 팀들의 라이벌 관계, 영국인과 미국인의 스포츠에 대한 관점의 차이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들은 이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확일 것이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영화 초반에 피트 던햄이 맷 버크너에게 “제발 사커라 부르지마!(Stop saying Soccer!)”라고 외치는 대목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맷 버크너의 누나 또한 막 영국에 도착한 그에게 대영제국 사람 앞에서는 ‘사커’라 부르지 말고 ‘풋볼’이라 부르라고 충고하지 않던가. ‘Soccer’보다는 ‘Football’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