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실망스러운 경기 결과를 만든 최홍만에 대해서 안 좋은 여론이 폭발할 지경이다. 필자는 얼마 전 ‘그게 최홍만의 잘못인가?’란 글을 통해서 작은 미노와맨과 싸우는 것을 조롱받는 최홍만을 옹호했던 적이 있다. 이미 8강전에서 이긴 둘이 4강에서 만날 뿐, 균형이 맞지 않는 대진은 단체에서 정한 것이므로 미스매치처럼 보일지언정 최홍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 요지었다.
그 글엔 최홍만이 이변 없는 한 이길 것이란 전제가 깔려 있었다. 필자는 이번 ‘슈퍼 헐크 토너먼트’에서 최홍만이 결승에 간 후 게가드 무사시에게 패할 것이라 예상했기에 미노와맨의 승리는 사실 예상 밖이었다. 물론 상대의 발목을 꺾는 ‘힐 훅’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웬만하면 예상했겠지만 사실 그것만 조심하면 될 정도로 덩치 차이가 엄청났기에 미리 대비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웬걸, 뚜껑을 열어보니 최홍만이 진짜 골리앗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미노와맨이 결국 현대판 다윗이었던 것이다. 이미 그는 밥 샙을 8강에서 잡았으니 골리앗 수집가라고 해야 하나?
최홍만의 비극과는 달리 이번 드림(DREAM) 11회 대회는 시청률 상에서는 12.7%로 성공을 거뒀다. 최홍만의 경기는 19.1%를 올리면서 근래 나오지 않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기에 흥행에서는 좋은 결과였다. 격투기 매니아들이 간과하고 있으나 필자가 계속 강조해왔던 부분이 있는데 드림(DREAM)은 2009년 방송국에서 편성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채널에 남은 대회이기에 시청률에 단체가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6회 대회 중 2회만이 공중파 프라임타임에 배정되었고 나머지 4회는 편집된 방송이 새벽 두시 넘어서 방영되는 불안한 상황이며 이마저도 내년에 어떻게 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다음 12회 대회는 철장에서 경기가 펼쳐진다면서 격투기 매니아들 사이에선 화제가 되고 있지만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에는 참으로 미안한 말이나 실상 단체의 미래엔 큰 변수가 되지 못할 것이다. 새벽 편성에 지연 중계이니 5%를 넘을 수도 없고 단체나 방송사나 이 대회의 결과로 흥행의 척도를 삼진 않는다. 결국 2010년 드림(DREAM)의 공중파 생존의 키는 최홍만이 나오는 프라임타임대의 시청률이었던 것이다.
최홍만의 종합격투가 변신은 드림(DREAM)의 생존이라는 화두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일본 단체 FEG의 세 개 브랜드 중 가장 취약한 드림(DREAM)을 구하기 위해 투입된 스타가 바로 최홍만이었던 것이다. 드림(DREAM)의 에이스 추성훈은 미국으로 가버렸고 사쿠라바 카즈시는 노쇄했기에 최홍만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진 상황이다.
최홍만은 8강에선 메이저리그 홈런왕 호세 칸세코를 수혈 받아 4강에 무혈 입성하는 동시에 연패를 끊을 수 있었다. 최고 시청률을 담보하는 스타가 공중파 방영에 맞춰 다시 한 번 나와야 하니까. 2009년 최홍만은 새벽편성 방송에 나온 적이 없다. 4강전에서도 소코주나 게가드 무사시와 싸우는 것보단 가장 승산이 높은 미노와맨과 싸우는 것이 나았기에 최홍만에게 미노와맨이 주어졌던 것이다. 결승전은 연말 12월 31일 펼칠 예정이었고 여기에서 최홍만이 우승을 놓고 싸우면 20%를 확실히 넘는 대박경기가 될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웬걸, 미노와맨에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나마 전엔 강자들에게 패했기에 용서가 되던 분위기였지만 너무 작은 상대에게 지자 격투기에 문외한인 일반 팬들에겐 ‘덩치 값을 못하는 천하장사’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적으론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적어도 이 분야에서 이름값으로 대한민국 일반 팬들의 인식을 사로잡는 스타는 추성훈과 최홍만이 쌍두마차이고 그 뒤로 표도르, 김동현, 크로캅, 브록 레스너 정도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 중 하나가 무너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주로 고찰하는 ‘산업으로 보는 격투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최홍만의 패배는 단순한 1패 이상의 비극이다. 격투기 단체 FEG에게 있어서 두 번째 시장, 어쩌면 일본 이상의 비중을 둘 수도 있었던 대한민국이 흔들리는 것이 보이니까. 마사토라는 간판의 은퇴, 야마모토 노리후미의 부진에 이어서 드림(DREAM)을 책임지라고 보낸 최홍만마저 흔들리면서 간판의 붕괴는 심각할 정도이다. 1993년 FEG의 출범이후 가장 큰 위기는 2010년이 아닐까 싶다.
최홍만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분명 컸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계속 부응하지 못했고 이젠 인내심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안 좋은 반응이 많지 않나 싶다.
허나 필자는 최홍만을 놓아주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팬들의 분노나 인터넷에서 떠도는 글들이 그간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떠올리셨으면 좋겠다. 기대가 큰 건 알겠지만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인간적으로 조롱까지 하는 건 온당치 못하다고 본다. 일본 땅의 일본 단체에서 대한민국 선수가 간판으로 활약하는, 이 분야에선 거의 이례적인 외국인 에이스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걸 날려버렸기에 지금 가장 힘든 건 최홍만 본인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