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인터넷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과 팀 동료인 신예 유망주 마메 비람 디우프가 경기중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다는 기사가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일제히 보도됐다.
대략적인 상황은 이렇다.
박지성은 지난 7일(한국시간) 울버햄튼 울브스와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1-0 맨유 승리) 도중 울버햄튼 진영 페널틱 박스 부근에서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와 2대1 패스를 주고받은 뒤, 페널티 박스 오른쪽 측면을 파고 들었고, 이후 중앙 쪽으로 땅볼 크로스를 연결했지만 패스 타이밍이 다소 늦어 상대 수비수에게 걸리고 말았다. 이때 문전쇄도 하던 디우프가 박지성의 패스가 연결되지 않자 양 손을 들어 골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문제는 그 다음 상황이었다. TV 중계 카메라가 다소 짜증스런 표정으로 "what? what?"이라고 누군가에게 뭔가를 되묻는듯한 박지성의 모습을 잡은것.
이 장면을 두고 한 인터넷 매체의 기자가 당시 박지성이 "what? what?"이라고 짜증스럽게 되물은 대상이 디우프였다고 보도하면서 두 선수가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보도했다.
실제로 당시 중계 영상을 통해 접한 당시 박지성의 입모양이냐 표정은 다소 짜증스러운 듯한 모습이었고, 평소 '순둥이'로 통하는 박지성에게서 쉽사리 접하기 힘든 표정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중계 영상에는 박지성이 'what?'이라며 누군가를 향해 외치는 장면은 보였으나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박지성이 'what?'이라고 외치는 방향은 언뜻 보기에도 디우프가 서있던 반대 방향으로 보였고, 보기에 따라서는 맨유 벤치로부터 작전지시를 받는 상황, 또는 다른 동료와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상황으로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물론 이와 같은 상황은 맨유와 울버햄튼의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 있던 기자라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고, 문제의 보도를 한 기자도 그 현장에 있었다면 당연히 '박지성-디우프 신경전 사건'은 움직일 수 없는 팩트를 보도한 것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박지성과 디우프가 신경전을 벌였다고 기사를 최초 작성한 기자가 문제의 장면에 대한 기사를 작성한 근거가 오로지 TV 중계 화면이었다는데 있었다. 결국 기자도 시청자들과 마찬가지로 중계 화면에 잡힌 장면 외에 다른 장면을 볼 수 없었으며 박지성과 디우프가 신경전을 벌였다고 확인할 수 있는 정확한 장면 역시 보지 못한 것.
필자가 확인한 그 어떤 기사에도 박지성과 디우프가 직접적으로 설전을 벌이는 장면이나 박지성의 'what?'이라고 외치는 그 대상이 디우프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은 없었다. 이와 관련된 박지성을 비롯한 그 어떤 맨유의 멤버들의 코멘트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이 기사는 보도의 핵심이랄 수 있는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심각한 결함이 있는 기사였던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당시 상황에 대한 진상이 한 매체를 통해 밝혀졌고, 박지성과 디우프 사이에 신경전이 있었다는 보도는 잘못된 보도인 것이 확인됐다.
9일 <스포츠동아>의 영국 현지 통신원인 전지혜 씨에 따르면 국내 언론들이 박지성과 디우프가 신경전을 벌였다는 그 상황은 박지성과 디우프의 대화가 아니라 주장 리오 퍼디낸드와의 대화였다.
당시 센터라인 근처에 있던 퍼디낸드는 맨유가 코너킥을 얻자 울버햄프턴 진영에 있던 박지성에게 위치에 대한 지시를 내렸는데 박지성이 팬들의 응원소리에 퍼디낸드의 얘기가 들리지 않자 “What?” 이라고 되물은 것. 이에 퍼디낸드는 박지성에게 달려와 한참 얘기를 나눴고, 그 옆에 수비수 게리 네빌도 팔로 오른쪽을 가리키며 코너킥 상황에 박지성이 있어야 할 위치를 조정해 준 상황이라는 것이 전지혜 통신원의 상황정리(관련기사)였다. (관련 기사: http://sports.donga.com/sports/soccer_List/3/0110/20100308/26700786/1)
분명 TV 중계화면 만을 근거해 작성된 기사가 잘못된 것임이 드러난 순간이다.
문제는 사실관계 조차 불분명한 문제의 보도가 있은 이후 이 기사를 베꼈는지 아니면 이 기사에서 모티브를 얻었는지 모르는 다른 매체들이 일제히 박지성과 디우프가 신경전을 벌였다고 보도하면서 관련 사진과 동영상을 게재했다는 점이다. 물론 동영상은 당시 TV 중계 영상이 전부였다. 그 가운데 일부 매체는 문제의 보도를 사실상 받아쓰기 수준으로 보도했다. 한 마디로 잘못된 보도를 앵무새처럼 독자들에게 전달한 셈이다.
특히 재미있는 사실은 그 '앵무새들' 가운데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단독 중계할 예정인 지상파 방송사 SBS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SBS는 7일 보도에서 박지성의 교체출전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패스를 기다리던 팀 동료 디우프가 심하게 불만을 표출하면서, 박지성과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고 언급함으로써 '앵무새들의 합창'에 가세, 수많은 축구팬들로 하여금 박지성이 디우프와 실제로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믿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동계올림픽과 월드컵을 단독 중계하는 지상파 방송사에서 보도한 내용을 의심할 시청자는 그리 많지 않다. (참고: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718354)
물론 당시 상황이 박지성과 디우프가 신경전을 벌인 것이 아니라는 보도 역시 하나의 주장에 불과할 뿐 잘못된 보도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실제로 박지성과 디우프가 신경전을 벌였을 수도 있다. 문제는 두 선수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의심을 할 만한 직접적인 장면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없었던 반면 박지성이 퍼디낸드, 네빌과 이야기 하는 장면을 직접 본 기자는 있다는 점이다.
보도의 기본은 정확한 사실의 전달이라는 점을 이번 박지성-디우프 신경전 보도 헤프닝으로 다시 한 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