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출전할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최종 엔트리 구성이 막바지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일(한국시간) 런던에서 있었던 아프리카의 강호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에서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히는 디디에 그로그바 등 가공할 코트디부아르의 공격을 잘 막아내는 한편 이동국과 곽태휘가 연속골을 터뜨리며 2-0 으로 승리, 국내는 물론 세계 언론들의 주목을 받은바 있다.
경기 직후 허정무 감독은 코트디부아르전에 출전한 선수 구성이 사실상 남아공월드컵 본선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것임을 시사했다.
허 감독이 그와 같은 언급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동안 대표팀에서 뛰지 않던 해외파들의 컨디션과 경기감각을 확인해본 결과 부상으로 이날 경기에 빠진 박주영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해외파 선수들이 건재함을 확인했기 때문이고, 또 하나의 이유는 지난 1월 남아공 고지대와 스페인 전지훈련을 통해 손발을 맞춘 국내파 선수들이 개인적인 기량향상은 물론 대표팀 내에서 나름대로 팀워크를 원활하게 맞출 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 올랐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에서 제 역할을 해낸 선수는 앞으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거나 하는 돌발상황을 맞지 않는한 남아공행은 물론 주전 자리까지 예약한 것으로 봐도 과연은 아닐듯 싶다. 이는 그동안 거의 대부분의 포지션에서 여러 선수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쳐 얻어진 결과다.
그러나 대표팀 내에서 거의 모든 포지션이 주전 경쟁으로 소리없는 전쟁터인 반면 주전 골키퍼의 자리 만큼은 사실상 이운재 만이 존재하는 '무풍지대'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허정무 사단에서 적어도 골키퍼 포지션에서 만큼은 어떤 경쟁구도나 실험도 보여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이운재가 다른 후배들에 비해 기량과 경험 면에서 월등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운재가 기량과 경험에서 후배들보다 비교되지 않을 만큼 월등한 위치에 있다고 해도 축구에 있어 수비라인 최후의 보루인 골키퍼 포지션에서 어떤 긴장감이나 경쟁의식도 발견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은 사상 첫 월드컵 원정 16강행을 노리고 있는 대표팀에 바람직스럽지 않은 요소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허정무호의 보이지 않는 위험은 골문 쪽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동안 이운재와 함께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려온 골키퍼들은 김영광, 김용대, 정성룡 정도. 이들은 모두 골키퍼로서의 기량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운재와 비슷하다거나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이운재 보다 더 나은 능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들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이운재와 포지션 경쟁을 벌이고 있거나 확실하게 이운재의 뒤를 받치는 선수로서 자리매김 한 '넘버 2'로 꼽을 수 있는 선수는 불분명한 상황이다. 사실상 없다고 보는 편이 맞는 말일 것이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이운재의 기량도 기량이지만 그의 풍부한 경험 때문이다. 다른 골키퍼들의 기량이 이운재와 비슷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동안 이운재가 수많은 월드컵 경기를 통해 차곡차곡 쌓아둔 경험까지 이겨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하나 남아공 월드컵 개막을 4개월여 앞둔 현 시점에서 이운재의 뒤를 받칠 확실한 '넘버 2'를 키워내는 모습이 보이는 않는 것은 분명 우려된다.
허정무 감독은 그동안 가진 평가전에서 이운재의 출전시간과 그 외 백업 요원들의 출전시간을 골고루 배분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만 백업 요원들도 실전 감각을 강화하고 실전에서 월드컵 공인구인 '말썽꾸러기' 자블라니에 대한 적응력을 키울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주전이자 대선배인 이운재가 그라운드 밖에서 후배들의 플레이를 보고 '멘토'로서 조언을 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허정무 감독은 이와 같은 노력에 부족했다. 그와 같은 모습은 지난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허정무 감독 본인은 부정할 수도 있으나 허 감독의 선수 기용 스타일은 과거에 가졌던 선입견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도 사람이니 어쩔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앞으로 있을 스페인이나 잉글랜드 등 강호들과의 평가전은 그야말로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는 실전 모의고사의 의미를 갖는 경기인 만큼 본선 무대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시뮬레이션 한다는 의미에서 골키퍼 포지션에 대한 실험도 함께 시도해 줄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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