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격투기와 미국 격투기는 출발점이 많이 달랐다. 프로레슬링에서 반발해서 뛰쳐나간 선수들이 주축인지라 초창기엔 승부조작 의혹도 있었지만 실전형 프로레슬링과 주짓수와의 대립을 통해 체계를 잡아가며 인기를 끌던 게 일본 격투기라면 미국 격투기는 프로레슬링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출발했다. 미국 격투기는 엔터테인먼트의 측면이 많이 부각된 미국 프로레슬링과 비슷하게 가기 보단 오히려 복싱과 비슷한 사업방식을 택했다. 일본 격투기는 이벤트의 화려함이나 스토리를 부각시키는 일본 프로레슬링과 비슷한 모습이 있기에 UFC와 PRIDE 혹은 K-1의 등장 장면이나 선수 홍보 영상을 보는 경우 차이가 난다고 느끼는 건 출발점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보다 거리가 꽤나 멀었던 미국에서 최근 들어 프로레슬링과 격투기 간의 경계가 과거보단 많이 줄어들고 있다. 이를 긍정 혹은 부정적으로 나누기 보단 다양한 측면에서 조망할 수 있겠는데. 여하튼 과거보단 둘의 거리가 상당부분 가까워진 건 맞다.
먼저 격투기에 대해선 프로레슬링 계의 정상급 스타들이 호감을 보였다. 브록 레스너는 아예 최고 흥행스타가 되었으며 바비 래쉴리도 격투기로 이적한 선수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은 UFC를 비롯한 대부분 격투기를 빼놓지 않고 본다고 밝혔고 영화스타가 된 더 락은 아예 자신이 20대 시절 격투기가 이 정도 시장이었다면 뛰어들었을 것이란 말까지 남겼으며 언더테이커 역시 WWE에서 부상으로 결장함에도 격투기 이벤트를 아내 미셸 맥쿨와 같이 참관가기도 했다. 랍 밴 댐 등을 비롯해 적잖은 미국 프로레슬러들이 격투기에 호감을 보이는 게 사실이다.
격투가들이 프로레슬링에 호감을 보인 경우도 최근 몇몇 사례가 있다. 퀸튼 잭슨은 원래 프로레슬러 정크 야드 독을 따라 해서 사슬을 감고 나오는 캐릭터를 보였고 WWE RAW에도 출연했으며 얼마 전에도 단발적인 출연은 바로 할 수 있으며 어려서부터 프로레슬러가 되고 싶었다는 의견을 밝혔다. 퉁퉁해서 귀여운 로이 넬슨 역시 WWE에 출연하고 싶단 의사를 밝히다가 최근엔 격투기 상 계약분쟁으로 인해 생계를 위한 진로탐색의 과정에서 WWE의 짐 로스에게 진출가능성을 묻기도 했다. 팀 실비아도 가끔 구경을 가는 선수 중 하나이며 킹 모 같은 선수는 아예 WWE 수련 단체에 갔다가 다른 선수의 조언을 듣고 격투기로 뛰어들었지만 은퇴 뒤엔 다시 프로레슬링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일본에선 프로레슬러가 격투기에 참가하고 미르코 크로캅도 프로레슬링 대회에 등장하는 등 교류가 빈번하다. 그러나 모든 팬들이 고루 사랑을 나눠줄 수는 없는 법, 일본에선 나가타 유지 같은 정상급 프로레슬러들이 표도르 같은 격투가들에게 처참하게 무너지면서 흥행의 중심이 급속도로 격투기에 넘어갔던 과거도 있었다. 물론 미국은 비즈니스 방식이 다르며 일반 팬들의 정서상 별개의 분야로 치부되었고 격투기에서도 프로레슬링과는 일부러 거리를 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의외로 양측에서 호감을 보이면서 분위기가 과거와는 다른 듯하다.
뭐가 옳다고 말할 수는 없고 지금은 그저 현실이며 업계 종사자들이 자신들의 사견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면 족하지 않나 싶다. 다만 현재 상황에선 프로레슬링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이들이 격투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반면 지금을 이끌고 있는 존 시나와 WWE를 이어받을 트리플 H가 그다지 호감가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과 달리 격투기의 간판스타들 중 극히 일부만 프로레슬링에 호감을 표시하는 분위기라 일반 팬들 중에선 분위기가 바뀐다고 느낄 이들도 있을 듯하다.
실제로 미국에선 10대와 40대 남성층, 그리고 여성 시청자들이 프로레슬링을 본다면 만 18세에서 34세 사이 혈기왕성한 타겟 시청자들이 격투기 팬인지라 WWE 같은 경우 그 부분을 포기하고 10대 위주를 타겟으로 바꿨고 TNA는 그 공백을 노리고서 20에서 30대 사이를 노리고도 있는데. 그 와중에 선수들은 생계, 혹은 개인적 관심사로 다른 분야에 호감을 표시하면서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프로모터나 단체는 어떻게 팬을 끌어올지가 화두일 걸로 보인다.
<사진=퀸튼 잭슨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