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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칼럼 해설위원/성민수 라스트라운드

내리막길을 걷는 선수들의 비극


지난 에밀리아넨코 표도르의 패배도 충격적이지만 안드레 알롭스키의 몰락 역시 안타깝긴 마찬가지였다. 물론 세르게이 하리토노프의 부활은 반가운 일이나 경기 내용을 보면 알롭스키는 정상으로 다시 가기 쉽지 않은 듯한데 한 때 UFC 헤비급의 간판이었던 안드레 알롭스키와 팀 실비아의 몰락을 보면 PRIDE 4대 강자들의 현재 주소와 상당히 흡사해 보인다.

팀 실비아는 한 때 23승 2패로 UFC 헤비급 3차 방어까지 성공한 최강이었으나 랜디 커투어에게 타이틀을 내줬고 팬들은 수비 위주의 재미없는 경기를 하는 그의 몰락에 환호를 보냈다. 이후 브랜던 베라를 잡으면서 부활하나 했더니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에게 서브미션으로 패했고 UFC와는 상호 계약의지가 없자 자연스럽게 타 단체로 이적하게 된다.

실비아는 새로 출범한 어플릭션이 과도한 몸값을 지불하면서 거품론이 일었지만 표도르와 당당하게 맞선 경기에선 덩치 값을 못하고 1라운드 36초 만에 패하더니 승리를 위한 제물이라 여겨진 복서 레이 머서에겐 9초 만에 KO당하면서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진다.

그래도 절치부심 후 중소형 단체들을 다니면서 4연승을 구가해 부활의 날개를 펴나 했더니 지난 1월 28일엔 에이브 와그너라는 무명의 격투가에게 32초 만에 KO로 패하고 만다. 이제는 그의 승리보다 패배가 회자되는 안타까운 지경이고 ‘타이탄 파이팅 챔피언십’이란 생소한 단체 해설자는 UFC 헤비급 챔피언이 무너졌다면서 새로운 스타 탄생을 위한 초석으로 실비아를 활용하고 만다.

한 때는 카리스마와 실력, 그리고 격투기 헤비급 중 최고 복싱 실력을 갖췄다는 안드레 알롭스키의 몰락 역시 심각하다. 테이크 다운 방어능력도 좋고 몸놀림도 빠른 편이며 만 31세이니 나이도 문제가 되지 않고 서브미션 패배도 없을 정도로 그라운드도 괜찮다. 그러나 문제는 약한 턱이었다. 턱 문제로 인해 KO패가 6회나 되었던 것이다.

알롭스키는 표도르에게 패한 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자살시도나 약물남용 등의 우울한 소식만 들렸다. 이후 안토니오 실바, 브렛 로저스에게도 제대로 힘도 못쓰고 패하더니 세르게이 하리토노프에게도 1라운드에 무너지면서 최근 네 경기 중 4연패에 3KO패란 안 좋은 결과만 추가하고 말았다. 이들 뿐 아니라 최근 2연패의 표도르, 이제는 은퇴 시기만 고민해야 하는 크로캅 등은 과거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왜 한 때 최고 스타들이 순식간에 벼랑으로 몰릴까? 이기는 법만을 아는 이들과 지는 것을 깨달은 이들의 몸의 반사는 현저하게 다르다. 한 번 충격을 겪으면 몸이 그걸 기억하고 자신감이 결여되는 면도 문제이다. 알롭스키의 경우 2005년과 현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경기 중 과감함이 결여되어 있다. 혹시나 상대의 펀치에 쓰러질 가능성 때문에 과감하게 들어가지도 못하고 상대를 몰아붙이던 과거의 분위기도 나오질 않는 것이다.

오르는 법이 있으면 내려가는 길도 있겠지만 당사자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아직 젊은데도 부진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렸던 알롭스키처럼 가장 높은 곳에 섰을 때와 내리막길에 있을 때의 차이가 심리적인 공황상태를 유발하며 극히 일부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이들도 있는데 알롭스키의 자살 시도도 그런 맥락이다.

선수들의 전성기는 너무 짧은 편이다. 정상에 있는 선수들은 약점이 분석되고 알롭스키같이 치명적인 약점을 갖은 선수는 상대에게 손쉬운 목표점을 주는 동시에 본인에겐 숨기고 싶단 두려움을 증폭시킨다는 문제가 있다. 이에 내리막길을 가는 선수는 그 분위기를 반전시키기가 힘들다. 그래도 알롭스키나 실비아가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으니 그들의 뜻이 이뤄지길 기대해봐야겠다.

<사진=arlovs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