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헌트를 보면 재미있는 면이 있다. 그는 K-1이나 PRIDE의 주요 스타였기에 우리나라에선 인지도가 높은 반면 일본 격투기를 잘 모르는 미국의 일반 팬들에겐 거의 존재감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UFC 127회 대회를 앞두고 우리나라에선 BJ 펜보다 마크 헌트의 경기가 더 화제였던 반면 현지에선 거의 기대가 없었다.
헌트는 호주 대회였기에 뉴질랜드 선수로서 특혜를 입어 참가했지만 그의 경기는 일본에서와 달리 메인 카드에도 들지도 못하는 위계였다. 단체를 옮긴 뒤 과거의 화려함을 남들은 잘 모르는 서글픈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헌트는 이변을 만들어냈다.
마크 헌트의 UFC 진출은 의외의 일이었다. K-1 2001년 그랑프리 우승자로서 강한 맷집의 소유자이긴 하나 종합격투기에선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한 터였고 타격은 괜찮으나 너무도 부실한 그라운드 기술 때문에 한계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어려움 속에서 나온 이번 승리는 그의 최근 격투기 6연패를 끊는 동시에 UFC 퇴출에서 모면되는 효과까지 거뒀다.
헌트의 종합격투기 초기는 나쁘지 않았다. PRIDE 시절 이벤트성으로 만들어진 첫 경기에선 요시다 히데히코에게 졌지만 반달레이 실바나 미르코 크로캅과에게 2:1 판정승을 거뒀고, 경기 중 무지막지한 엉덩이 내려찍기 공격으로 팬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종합격투기의 새로운 활력소로 여겨지기도 했다.
격투기에 맛을 들인 헌트는 5승 1패까지 거두면서 분위기를 올렸지만 결국 밑천이 드러나고 말았다. 조쉬 바넷을 시작으로 표도르, 오브레임에게 패했고 심지어 맬빈 맨호프에게 타격으로 무너지면서 강한 맷집의 사나이도 옛말이 되어버린 듯 했다. 이미 상대들은 헌트에 대한 해법을 갖고 있던 것도 문제였다. 그라운드가 너무 약해 일단 넘어지면 맥을 못 추는 반쪽자리 선수였기에 차라리 K-1에 복귀 해 선수생활 마지막을 정리하는 것이 최적이란 평가가 많았다.
그런데도 2010년 뜬금없이 UFC에 진출하면서 우려를 더 했다. 아니나 다를까, 2010년 9월 UFC에서의 첫 경기에선 션 맥코클에게 1라운드 1분 3초 만에 암바로 패해 기존과 같은 맥락의 결과를 반복했으며 이번 크리스 투크셔러와의 경기에서도 이변이 없는 한 패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UFC에 오기 전까지 20승 1패의 거의 완벽한 기록을 갖고 있던 크리스 투크셔러는 1승 2패를 기록하면서 이번엔 헌트를 잡아야 하는 처지였기에 더욱 절실했다. 벼랑으로 몰린 두 사람이 갖은 운명의 일전에서 헌트는 본인의 특기인 타격으로 경기를 끌고 가면서 1라운드를 유리하게 마무리했고 2라운드에 접어들자 1분 41초 만에 어퍼컷을 적중시켜 KO를 거두면서 최근 6연패의 사슬을 깼고 UFC 첫 승을 이뤄낸 것이다. 최근 표도르, 크로캅, 노게이라 같은 선수들이 하나 둘씩 무너지는 상황에서 나오는 반가운 소식이 아닌가 싶다.
이번 승리만을 놓고서 마크 헌트가 UFC 최정상으로 올라설 것이라 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남들이 안 된다고 하는 길을 묵묵하게 걸어가서 결국 목표를 이뤄 내는 그의 투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