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셰리프(Sheriff), 벤츠필스(Ventspils). 유럽 축구의 매니아라도 고개를 갸웃할 만한 생소한 이름들이지만, 앞으로는 UEFA컵이 개편하여 새로 출범한 2009/2010시즌의 유로파리그(Europa League) 본선에 진출한 팀들로 기록에 남을 이름들이다.
보안관이란 특이한 이름을 내세운 FC셰리프는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위치한 소국, FIFA랭킹 88위에 불과한 몰도바의 작은 클럽이고, 벤츠필스는 발트3국 중 하나인 라트비아의 외항에 위치한 인구 4만명의 소도시를 근거로 하는 축구팀이다. 물론 두 팀 모두 사상 최초로 유럽클럽대항전의 본선에 나선 것인데, FC셰리프는 1무 1패로 H조 최하위에 쳐져 있기는 하지만 첫 경기에서 루마니아의 명문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와
또한 지난해 유로2008를 공동개최한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클럽들의 거센 돌풍도 주목의 대상이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는 라치오와 비야레알을 연파하며 G조선두를 달리고 있고, C조의 라피드 빈도 함부르크를
이러한 유로파리그의 초반 흐름은, 아직 최종적인 결과를 논하기는 이른 시즌 초반의 시점이기는 하지만, 유럽의 중심권(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아닌 변방국가(그다지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 편의상 사용한다.)들의 상위권 클럽과 유럽의 중심국가들의 중상위권에 해당하는 클럽 사이의 간격이 좁혀지는 양상을 나타내는 사례들로 볼 수 있다.
초일류클럽들이 등장하는 챔피언스리그(Champions League) 무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키프로스의 아포엘FC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첼시를 상대로 눈부신 선전을 보여주었고, FC취리히는 비록 패했지만 맹추격을 통해 레알 마드리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데 이어 산시로에서 AC밀란를 꺾는 쾌거를 이루어내기도 하였다.
물론 이런 선전들이 찻잔 속의 돌풍처럼 반짝하고 사라질 수도 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특히 그러하듯이, 토너먼트를 통해 팀들이 압축되는 단계에 이르면 어느새 익숙한 팀들만 남아 있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시즌 유럽클럽대항전에서 보이는 이변의 양상들은 규정과 제도를 정비하여 변방국가의 팀들에게 유럽클럽대항전 참가의 문호를 넓힌 UEFA 미셸 플라티니 회장의 개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소수 엘리트클럽들에 대한 견제의 스탠스를 취하는 플라티니 회장의 개혁의 큰 줄기는 유럽 축구의 상향평준화를 지향하는 것이고, 변방의 클럽들이 꾸준히 중심권의 클럽들과 경쟁하는 기회를 제공하여 그 간격을 줄이는 방법론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초일류클럽들의 연합조직인 G-14이 플라티니 회장 취임 이후 해체하였더라도 엘리트 클럽들은 물론 건재하다. 트랜스퍼 윈도우의 빅딜을 주도하고, 프리미어리그, 프리메라리가, 세리에A 등 빅리그의 상위권을 늘 차지하며, 챔피언스리그의 토너먼트 단계에 지속적으로 올라서는 이러한 클럽의 이름들은 굳이 나열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유럽 축구계도 소수의 엘리트들과 다수의 평준화된 사회가 공존하는, ‘양극화’라는 시대의 조류와 유사한 흐름을 나타내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