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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칼럼 해설위원/성민수 라스트라운드

고엽제 피해자였던 프로레슬러

최근 고엽제를 미군이 우리나라에 묻었다는 증언이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월남전에서 ‘에이전트 오렌지’로 불렸으나 실상 그 위험성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엽제는 미군들에게도 피해를 주었는데 프로레슬링 선수 중에서도 고엽제로 인해 조기 은퇴를 한 경우가 있었다.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 실’에서 근무하다가 전역 후 프로레슬러가 되었으나 고엽제의 피해로 은퇴한 제시 벤추라가 바로 고엽제의 피해자이다. 그는 우리에겐 주로 해설자로 알려졌지만 1998년 미네소타 주 주지사에 당선되면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제시 벤추라는 머리가 벗겨지고 근육질이기에 한 세대 이전의 대스타인 ‘슈퍼스타’ 빌리 그램과 비슷한 이미지였는데 헐크 호건과 컨셉이 어느 정도 겹쳤으나 호건은 선역인 반면 벤추라는 악당의 이미지가 강했다. 허나 대인관계에선 그 반대가 아닌가 싶은데 자기의 권리만큼은 확실히 챙기던 사람이 호건이라면 좀 더 거시적인 안목에서 동료들을 고려하던 사람이 제시 벤추라였다. 둘의 관계는 초기엔 나쁘지 않았으나 호건의 계략에 자신이 속은 걸 알면서 후일 둘의 사이는 급랭한다.

그들이 갈라서게 된 건 1986년 선수노조를 결성하려는 몇몇 선수들의 움직임이 프로모터에게 발각되면서 몇몇은 해고되고 일부는 징계를 받은 사건 때문이었다. 한동안 누가 밀고했는지 몰랐던 벤추라는 후일 호건이 그랬다는 걸 알자 격분했지만 호건이 너무도 큰 스타가 되어버렸기에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벤추라는 만 33세이던 1984년 폐에서 혈종이 발견되면서 선수 생활의 위기를 맞는다. 악당 으로 기량보다는 언변과 카리스마가 장점이던 그는 치료를 병행하면서 링에서 덜 활약하는 방향을 꾀해 1985년엔 랜디 마초맨 새비자와 미스 엘리저베스와 악당 태그팀을 결성했지만 건강상 한계를 느끼자 은퇴를 결심한다. 고엽제의 영향 때문에 생긴 폐혈종을 이겨낼 수 없던 것이다.

이후 특유의 달변으로 해설자로 활약해 강한 인상을 남겼고 영화에도 진출해 ‘프레데터 1편’에 나와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같은 부대원으로 두건을 쓰고 나왔지만 고엽제로 인해 선수로서 좀 더 성장할 기회를 놓친 건 아쉬운 부분이었다.

해설자로 인정받던 벤추라는 WWE와는 저작권 분쟁에 휩싸이면서 자신의 이미지와 목소리에 대한 로열티를 요구하다가 해고가 되었는데 이는 후배들이 정당한 권리를 받을 수 있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라이벌 단체 WCW에서 활약하다가 정계에 진출해 작은 도시인 부르클린 시티의 시장을 지낸 벤추라는 1998년엔 개혁당이라는 다소 낯선 당의 후보로 출마해 운이 좋게 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되기도 했다.

주지사 재임시절엔 좌충우돌하면서 논란의 주인공이 되었고 재선이 어렵자 아예 불출마선언을 하면서 체면을 지킨 벤추라는 이후 보수적인 색을 띈 발언으로 주목을 끌기도 했다. 고엽제는 특수부대 출신의 건장한 남성도 쓰러뜨린 무서움을 보였다. 합리적인 방안으로 잘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