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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칼럼 해설위원/성민수 라스트라운드

격투기 흥행카드에 대해서


[성민수의 라스트라운드] 열심히 하는 가수 남자 그룹에겐 미안하지만 필자는 사실 그들을 잘 구별하질 못한다. 가요를 거의 안 듣고 TV를 거의 안 보는 터이며 인터넷에서 남자 아이돌 기사가 나오면 클릭할리 없기에 아무래도 그들을 알긴 어려울 듯 하다. 허나 여성 아이돌은 구별이 된다. 이는 관심도의 차이가 인식의 차이를 만든다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경우 일부는 필자의 일에 예의상 관심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표면적인 것에 그치곤 한다. 어차피 필자도 타 분야에 대해 잘 모르니 비슷한 식의 대화가 오가곤 한다. 그래서인지 먹고 사는 것, 육아나 재테크, 그리고 건강 같이 공통의 관심사로 이야기가 집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미국, 그리고 일본에서 보는 격투기의 포커스는 다르다. 우리에게 있어서 관심사는 추성훈, 최홍만, 김동현, 표도르, 레스너 정도겠지만 일본의 관심사는 마사토나 야마모토 노리후미, 추성훈, 최홍만 등이다. 반면 미국에선 레스너, 척 리델, BJ 펜, 조르쥬 생 피에르, 카라노, 커투어 등이 큰 관심사이며 포레스트 그리핀도 큰 인기를 끌지만 최근 처참하게 무너지면서 앤더슨 실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분위기이다.

이렇게 단적으로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들이 시청률이나 흥행에서의 성공을 이끌었거나 언론의 화제가 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방송국에서 야마모토 노리후미에 대해 특집으로 편성했지만 시청률은 참담했다고 한다. 국경을 건너면 바로 무관심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사실 일반적인 현상이다. 각 문화권에 따라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는 다르다. 이런 특징을 격투기로 가져와보자. 국내 팬들이 많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표도르에 대해서 전 세계가 알고 있다거나 그가 가면 무조건 흥행이 된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격투기는 현재 전 세계적인 인기스포츠는 아니다. UFC가 북미대륙을 중심으로 최근 엄청나게 약진했고 동아시아에서 대한민국과 좋은 조건으로 방송계약을 맺었으며 투기에 관심이 높은 태국이 움직이긴 했지만 아직 유럽시장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UFC의 2008년 매출은 WWE의 절반 수준이었다. 게다가 유럽에선 영국을 제외하곤 아직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물론 쇼타임이 중심이 된 입식타격은 네델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등을 다니면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프랑스는 종합격투기 자체가 불법이고 독일은 지난 번 UFC 대회 이후 역풍이 심한 모습이다. 관련법규의 미비로 일이 커졌다면서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있었던 논쟁이 재현되기도 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선수 하나가 움직인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좌절할 것은 없다. 최근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가 격투기이며 적어도 내년 미국 시장에서도 약진할 분위기이다. 물론 그 수혜를 대부분 UFC가 가져갈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적어도 격투기 자체가 몰락하던 1996년부터 2004년까지의 암흑기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위에서 말한 화두로 돌아가보자. 표도르를 전 세계적인 흥행카드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세계 최강이긴 하지만 문제는 세계 최강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보고 싶어 하느냐이다.

다음 사례를 보자. 필자는 복싱을 잘 보는 건 아니고 다만 흥행을 분석하기 위해서 비슷한 분야인 복싱, 프로레슬링, 격투기를 비교하는 편인데 우리의 인식과 달리 유럽이나 미국에서 복싱은 현재도 인기가 많다. 물론 오스카 델 라 호야의 은퇴 후 제대로 된 흥행이 될지에 대해서 이야기가 많은 게 사실이고 최근 미국 유료시청채널의 최고 스타는 호야에서 브록 레스너로 옮겨간 상황이라 복싱이 격투기의 약진으로 다소 머리 아파지긴 했지만 여하튼 그건 향후 풀어갈 문제이고 복싱은 결코 죽진 않았다. 일본에서도 복싱 시청률은 격투기보다 높으며 자국 챔피언들이 돌아가면서 흥행을 이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복싱의 클리츠코 형제는 일반적으로 생소할 것이다. 격투기의 표도르는 알아도 클리츠코 형제를 아는 이들은 드물다. 허나 유럽에선 정반대다. 지난 UFC 독일대회도 클리츠코의 복싱 경기에 가려서 사실 큰 화제가 되지 못하기도 했다.

결국 복싱을 향유하는 팬들에게는 복싱 챔피언이 자신의 룰에 입각한 세계 최강이며 그를 보고 싶어서 돈을 쓸 용의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골프 세계 최강에 관심이 있을 것이고. 그러나 이런 현상을 놓고서 격투기 팬들이 답답해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야구도 세계적인 스포츠가 아니며 미식축구는 북미대륙을 떠나서는 큰 인기를 끌진 못한다. 크리켓을 좋아하는 나라도 있지만 우리에게 생소한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각자가 즐기는 분야가 따로 있고, 각자가 인정하는 세계 최강이 따로 있을 뿐이니까.

격투기에서 표도르는 앤더슨 실바와 더불어서 자신의 체급 최강으로 꼽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움직이는 대로 흥행이 된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복싱의 최강이라고 하더라도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큰 관심을 끌지 않는 것처럼 그간 미국에선 표도르의 존재는 격투기 매니아들이나 알 정도였던 것이다. 물론 어플릭션에선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스트라이크 포스로 가면서 현지 주요 언론에 대서특필된 것은 앞으로 그에겐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를 영입한 스트라이크 포스는 내년 공중파 CBS 방영권을 확보한 뒤 거기에 맞춰서 표도르의 2차전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우수한 자원이 있으니 많은 이들에게 알리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겠다. CBS에 방영되면 미국 현지에서 약 400만 시청자가 볼 것으로 예상되기에 그때가 되어서야 미국의 격투기 매니아들의 범주를 넘어 일반 팬들도 표도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