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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칼럼 해설위원/성민수 라스트라운드

대한민국에 숨어있는 격투기 유전자?


[성민수의 라스트 라운드]
제목은 일단 이렇게 뽑았지만 선을 긋고 싶은 것이 있다. 개인적으론 국가, 민족, 지역을 나눠서 우월함을 주장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이런 경계로 나누다가 보면 자신들의 혈통이 우월하단 ‘우생론’이 생기거나 종족적인 우수성이 집안까지 소급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런 경계의 구별로 인해 ‘나와 너’를 나누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 똑같다고 보기도 어렵다. 각자 갖고 있는 특징이 다르며 어떤 집단은 확실히 다른 집단에 비해서 우월한 분야가 있기도 하니까. 적색근과 백색근의 분포에 따라서 단거리와 장거리 선수가 나뉘기도 하며 유연성은 모든 집단의 평균이 비슷하지도 않을 것이다. 웬만한 헤비급 강자들은 서양인에 많은 것도 사례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격투기 사랑은 매우 높은 편이다. 전 세계에서 이 정도로 많은 다양한 단체들을 공짜로 방영하는 나라는 없다. 미국은 유료시청채널, 혹은 격투기 전문채널을 통해 다양한 격투기가 방영되기도 하지만 심지어 일본마저도 이 정도로 많이 방영하진 않는다. 표도르의 매니저는 스트라이크 포스로 이적하면서 표도르를 이용해 방영권을 확보할 나라로 러시아, 대한민국, 그리고 일본을 들었지만 일본은 위성TV 정도만 언급했으니 나올 돈은 사실상 별로 없다.

대한민국이 격투기에 미친 영향은 요즘 해외 프로모터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시장이라는 것 이상으로 크다. 재일교포인 최배달 선생과 역도산 선생은 각각 가라데, 프로레슬링에서 큰 획을 그은 사람들이다. 극진과 정도회관과의 라이벌 관계가 더욱 커지면서 입식타격으로 이어졌고, 프로레슬링과 브라질리언 주짓수의 라이벌 관계가 일본 종합격투기의 큰 뿌리가 되었던 것을 본다면 이들이 현대 격투기에 미친 영향은 비록 본인들의 의도한 바는 알 수 없지만 지대하다 할 수 있겠다.

입식타격의 최배달 선생 말고도 실질적인 K-1의 탄생에 있어서 큰 역할을 했던 마에다 아키라역시 재일교포다. 마에다 아키라의 RINGS에서 이시이 카즈요시는 단체의 운영을 배웠고 여기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K-1을 세운 것이다. 아직도 격투기 팬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PRIDE의 자금원은 재일교포라는 사실이 인터넷에까지 드러나면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일도 있었다.

적지 않은 재일교포들이 선수, 혹은 관계자로서 이 분야에 일했다. 그런 이유로 재일교포가 상대적으로 받는 불이익은 생각보단 덜 하다고 한다. 오히려 재일교포는 강하다는 선입견까지 있기도 하다.

예전에 추성훈과 사쿠라바의 대결에서 나온 크림도포 사건은 그 백미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일반 팬의 입장이라면 추성훈이 재일교포이기에 불리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당시 분위기는 뜨는 해 추성훈을 위해 지는 해 사쿠라바가 무너져야 하는 것이었다. 일본 격투기를 메인스트림까지 끌어올린 사쿠라바이지만 이젠 노쇠했기에 재일교포이든 일본인이든 혈통을 가릴 필요도 없이 카리스마가 있는 추성훈이 올라가는 게 맞는 수순이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크림을 바른 게 터지면서 일은 심각해지고 만다.

필자는 당시 스포츠서울 닷컴을 통해 소수의견을 냈었다. 단체의 운명에 대해선 단독의견을 내서 결국은 맞추는 게 일과가 되어버린 필자이지만 그래도 추성훈 선수 크림도포 사건 때는 단독의견은 아니었다. 일본 격투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대략 답이 보였을 테니까. 하지만 격투기에 큰 관심이 없던 언론들이 가세하면서 국내 여론은 추성훈이 재일교포라 차별을 받아 무기한 출장정지를 당했다는 것으로 규정되어진다. 이에 추성훈은 불쌍하고 사쿠라바는 나쁜 사람이 되면서 필자도 난데없는 친일파란 말을 듣기도 했었다.

그나마 실력으로 승부하고, 돈을 끌어 모을 선수가 있다면 누구든 상관없을 것이 프로모터이기에 사실상 재일교포가 그렇게 불리한 위치는 아니다. 대한민국 시장이 있다는 것도 이들에겐 힘이 되고 있다. 재일교포가 일본 격투기에서 큰 위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뭘까? 혹자는 유전적인 특징을 말하기도 할 것이다. 필자는 국사에서 말하는 문화의 유입순서나 백제유민의 이주 같은 걸 언급하고 싶진 않다. 혈통에서 우월함이 나온다는 이론이 맞다고 본다면 표도르나 앤더슨 실바의 조상님보다 격투기 유전자가 강한 분도 없을 테니까.

모든 것이 꼭 유전으로만 해결되는 건 아니다. 최근엔 두뇌나 키, 비만도 유전만이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란 의견이 지배적인데 격투기는 더욱 개연성이 적을 수밖에 없다. 아, 이렇게 보면 제목을 부정하는 건가? 필자의 글 제목에 의문부호가 붙는 경우는 사실 그게 결론이 아니니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개인적으론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래도 외국인의 입장이라 일본이란 땅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았기에 중심 분야보단 주변 분야에 포진할 개연성이 높았기 때문이리라. 그나마 갈수록 덜해졌지만 이민 1, 2세대들의 경우는 지금보단 많이 힘들었기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영업이나 오락장, 심지어 폭력세력의 일을 했다. 이는 재일교포가 일본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주변에 있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이런 상황을 개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인생이란 건 생각대로만 가는 건 아니고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택한 경우도 많으니까.

여하튼 일본 격투기는 대한민국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으며 지금도 그런 이유로 연계성이 높은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격투기를 좋아하는 문화의 특성상 어렵지 않게 일본과 같이 움직였다 할 수 있겠다. 거기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로 규정지을 건 어렵다고 본다. 어차피 문화란 건 서로 돌고 도는 것이니까. 여하튼 우리 문화가 이 분야에 쉽게 빠져들 수 있는 배경은 확실히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