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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유치에 또 '남북분단' 끌어들이나

정몽준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겸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과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이 오는 2022년 한국이 월드컵을 유치할 경우 북한과 공동개최 내지 일부 경기의 북한 개최가 가능하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 한국을 방문한 레이날드 테마리 오세아니아축구연맹(OFC) 회장은 1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정몽준 부회장과 오찬을 갖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은 2002년 월드컵을 성황리에 개최했고, 이를 계기로 한국에 큰 축구 붐이 일었던 만큼, 한국이 월드컵을 유치하려는 것은 타당하다”고 밝힌 뒤 “정몽준 FIFA 부회장이 2022 월드컵 유치와 관련, 남북한 공동개최 가능성도 언급했는데 상당히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정 부회장이 월드컵 남북 공동개최에 대해 언급했음이 간접적으로 확인된 셈이다.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도 같은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국이 2022 월드컵 유치권을 획득할 경우 북한에서 몇 경기를 치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월드컵 단독유치에 대해 보조를 맞추고 있는 전현직 축구협회장의 입에서 잇따라 월드컵 남북공동개최 내지 분산개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나온 것은 언뜻 보기에도 월드컵 유치 과정에 있어 남북분단 상황을 유치 명분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읽힌다.

한국은 2002 월드컵 유지전 당시에도 한국이 월드컵을 유치할 경우 한반도 평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운바 았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월드컵을 유치할 경우 북한에서 일부 경기를 치르겠다는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혔던 사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미루어 짐작할 때 그런 말이 오르내렸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국은 그동안 각종 대형 국제적 이벤트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남북 분단상황을 명분으로 내세워 여러 가지 대회 유치에 성공해왔다.

특히 동서냉전이 극에 달해 있던 1980년대 초반 남북분단 상황을 유치전략에 활용해 대회 유치에 성공한 1988년 서울올림픽의 경우 올림픽 이후 소련의 붕괴에 이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연쇄 붕괴가 이어지며 스포츠 외교 판도 뿐 아니라 세계 역사의 판도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평가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그리고 그동안 남북분단 상황을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한국이 또다시 남북 분단상황을 유치전략에 이용해 '평화 월드컵'을 표방하며 월드컵 단독 유치에 나서는 것이 과연 지혜로운 방법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초대형 국제 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함에 있어 정치적 명분 싸움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것은 어떤 요소보다 유리한 요소라고 할 수 있으나 적어도 국제 스포츠계에 있어 남북분단 상황은 더이상 '전가의 보도' 처럼 휘두를만한 무기가 아니다. 지난 두 차례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 패배한 강원도 평창도 유치과정에서 동계올림픽의 개최가 한반도 평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역설했으나 결국 유치전에서 졌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이 어떤 대형 국제 행사의 유치 경쟁에 뛰어들면서 남북분단 상황과 한반도 평화를 들먹이는 전략은 이미 '약빨'이 다됐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정몽준 FIFA 부회장이나 조중연 축구협회장 가운데 누구도 북한 측과 월드컵 공동개최 내지 분산 개최에 대한 사전 교감이 있었다는 망를 들어본 일이 없다. 또한 북한이 어떤 형태로든 월드컵 유치 의사를 표명한 사실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못 먹는 감 찔러라도 보듯' 내뱉는 월드컵 남북 공동개최 내지 분산개최에 대한 언급은 자칫 격이 떨어지는 행태로 비쳐질 수 있다.

월드컵유치위원회는 이제 남북분단 말고 한국에서 왜 20년만에 다시 월드컵 축구대회를 유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참신한 명분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남북분단이라는 케케묵은 콘텐츠로는 더 이상 FIFA 집행위원들의 선택을 이끌어낼 수 없다.

특히 카타르, 일본, 호주 등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원국들 가운데서도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이 2022년 대회 유치전에 뛰어들었고, 한국의 위치가 그다지 유리해 보이지 않는 현재의 상황에서 한국이 월드컵 유치를 위해 '투표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콘텐츠' 마저 부실하다면 공연히 '엄한' 돈 쓸 필요 없이 일찌감치 월드컵 유치전에서 발을 빼는게 현명한 태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