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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칼럼 해설위원/성민수 라스트라운드

격투기 마니아와 일반 팬의 간극


[성민수의 라스트라운드] 금년 12월 31일 연말 이벤트를 같이 하기로 선언한 일본의 1위 단체 DREAM과 2위 단체 센고쿠, 혹자는 이를 놓고 격투기를 위한 대연합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상은 센고쿠의 몰락이 만들어 낸 굴욕적인 종속일 뿐이다.

수많은 대한민국 파이터들의 현실적인 꿈의 무대였기에 필자로서는 딱 한 차례, ‘방영권이 없이 오래 생존하긴 어렵다.’라는 말만 했을 뿐, 일부러 논평하길 피해왔었다. 그간 몰락을 예견했던 미국의 2위권 단체들에 대한 태도와는 상반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젠 단체의 운명이 부정적인 것으로 귀결될 것으로 보이기에 안타깝게도 냉정하게 말해야 할 것 같다.

‘메이저 단체’로 부르긴 사실상 어려운 규모였던 센고쿠는 설상가상으로 흥행이 갈수록 나빠지면서 위기감을 고취시켰다. 그것은 그들의 정책적인 실수가 불러낸 결과였다. 이런 위기와 달리 국내 격투기 매니아나 관련자들 사이에선 센고쿠의 최근 행보를 놓고 극찬이 많지 않았을까 싶다. 매니아들에게는 어필할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센고쿠는 이름값이 있어 일반 팬들을 불러 모으나 격투기 기술이 부족한 파이터들을 배제하고 운동능력이 뛰어나거나 훌륭한 기량을 지닌 이들을 중용했다. 이는 단체의 수장 고쿠호 타카히로의 정책으로 격투기 매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게 사실이다. 즉 최홍만 같은 선수는 일본 1위 DREAM에서는 중용되지만 2위 센고쿠에서는 서기 힘들다고 보면 되겠다. 센고쿠는 일본에 많이 있는 유도 엘리트들을 불러오면서 새로운 격투기 스타를 찾는 작업에 열중하기도 했었다. 대한민국 파이터들도 차례로 진출하면서 우리에겐 꽤나 가깝게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갈수록 단체의 몰락은 눈에 보일 정도였다. 스타의 부재로 인해 경기장의 규모는 점점 줄어들었고 관중들은 작은 경기장마저 채우지 못했다. 심지어 메인이벤트보다 그 지역의 스타에게 더 큰 반응이 있을 정도로 선수들의 인지도가 높지 못한 건 치명타였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센고쿠는 유도의 신구세대 충돌이란 컨셉으로 요시다 히데히코와 이시이 사토시의 경기를 편성, 2009년 12월 31일 공중파 진출을 노렸으나 돌아온 반응은 냉담했다. PRIDE가 유도스타 요시다와 오가와 나오야의 대결을 메인이벤트로 잡았던 것이 불과 몇 년 전 일이지만 현실은 그 때와는 많이 달랐다. 이에 더 이상의 희망을 찾지 못한 스폰서 ‘돈키호테’측에서는 센고쿠의 수장 고쿠호 타카히로를 내보낸 뒤 1위 단체 DREAM과 제휴하는 새로운 행보를 선택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아름다운 연합처럼 볼 수도 있지만 이는 센고쿠가 최후를 앞두고 뭔가 시도하는 것으로 보는 게 더 낫다. PRIDE가 망하기 직전에 미국을 장악한다면서 진출했던 것이나 WWE 선수들을 헤비급으로 영입한다는 루머를 퍼뜨린 것처럼 일반 팬들이나 현실을 잘 모르는 둔감한 관계자들을 낚으려고 했던 것과 비슷한 정책이다. 위기에서 뭔가 극단적인 결단을 내리는 일본 단체들의 행보에 수렴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위기를 타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국 일본 2위 단체 센고쿠는 웬만하면 떠나지 않을 매니아들에만 집중했기에 일반 팬들이 사라졌고 이는 흥행에서의 몰락을 야기하면서 단체의 위기까지 간 것이다. 이에 다시 한 번 일반 팬들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최근 미국에서 UFC가 뜨는 이유는 대학생에서 만 34세 사이 혈기왕성한 성인남자들이 ‘쿨’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2000년대 중반 격투기가 약진했던 이유는 홍백가합전이 30%후반 대의 시청률로 떨어진 반면 PRIDE와 K-1의 연말이벤트가 각각 20%, 15%에 가깝게 갔기 때문이었다. 이는 매니아들의 힘이 아니었다.

2002년 대한민국의 붉은악마들의 대다수는 축구매니아라기보단 일반 팬들이었다. 2009년 현재 대한민국의 국민 스포츠는 야구이다. 매니아가 아닌 일반 팬의 증가는 야구와 타 분야와의 격차를 더욱 크게 만든 원동력이 된 것이다. 축구에서는 4년 주기로 혜성처럼 흥행의 흐름이 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2010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엄청난 성과를 거둔다면 야구의 일반팬들은 축구로 건너갈 가능성이 충분한 그런 유동층인 것이다. 이들의 기호는 쉽게 바뀐다. 결국 이들을 잡는 것은 어느 나라나 상관없이 단체의 성패에 있어서 결정적인 변수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매니아들이 유료시청채널을 구입해 집중적으로 자본을 몰아주는 미국식의 시스템이 있다면 센고쿠 같은 ‘격투기의 정신’에 부합하는 훌륭한 단체가 이렇게까지 몰리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일본에선 그건 어려운 이야기이고 인구가 적고 직접 관람하는 문화도 미약한 우리나라에선 더욱 힘든 이야기라 생각된다.

여하튼 일반 팬들을 움직여야 단체가 살아날 뿐, 매니아들에만 집중하면 결국 몰락한다는 것을 센고쿠의 사례가 입증했다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론 국내 선수들이 관련되었기에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다시 한 번 현실의 벽이 버겁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