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S파워블로거 닷컴

이상하고 수상해 보이는 '피겨연맹' 독립 추진

국내 일부 피겨 스케이팅 원로인사들이 현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피겨 스케이팅 부문을 별도로 분리, 피겨 스케이팅 연맹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24일 SBS 보도에 따르면 빙상연맹 전 피겨담당 부회장을 비롯한 피겨 원로들은 최근 회동을 갖고 그동안 빙상연맹의 이사진 선임과 의사결정, 해외 출장에서 피겨인들이 소외돼 왔고, 피겨 분야 행정은 피겨인들에게 맡겨야한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워 내년 2월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피겨 연맹'의 독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에 대해 빙상연맹의 한 관계자는 SBS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최근 피겨 붐을 이용해 일부 피겨인들이 개인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시작한 일"이라고 비판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한 일선 피겨 지도자도 SBS와의 전화 통화에서 "원로분들이나 저희나 마찬가지고, 피겨인 모두가 연아를 위해서 응원을 해주는 분위기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SBS는 "19살 소녀가 피땀흘려 키워놓은 한국 피겨의 파이를 놓고 어른들이 다투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며 리포트를 마쳤다. 결국 밥그릇 싸움이라는 말이다.

김연아 등장 이후 국내 피겨팬들은 빙상연맹의 행정에 강한 불신을 표시하며 '피겨 연맹'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김연아 덕분에 저변확대의 기회를 맞은 한국 피겨계가 차제에 피겨 연맹을 빙상연맹에서 분리 독립함으로써 피겨 발전과 선수 육성에 집중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피겨 연맹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였다.

이번 보도에서 언급된 원로들이 내세운 명분도 그동안 피겨 연맹 설립을 주장해온 일부 팬들의 시각과 일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이번 피겨 연맹 분리 독립 추진은 SBS의 보도내용대로 그리 순수하게만 볼 일은 아닌 것이 사실이다. 김연아의 인기를 등에 업고 '비즈니스'를 해보려는 사람들(피겨인들을 포함해서)이 너무나 많은 현재의 상황 때문이다.

빙상연맹은 현재 김연아로 인해 피겨는 물론 실력에 비해 미디어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비인기 종목에 머무르고 있는 다른 빙상 종목(스피드 스케이팅, 쇼트트랙 스케이팅)들에 대해서도 미디어나 스포스 마케팅 회사로부터 체계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피겨 연맹 분리 독립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피겨 연맹이 독립한다면 이런 미디어나 마케팅적인 지원이 피겨 연맹 쪽으로 쏠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빙상연맹 역시 피겨 연맹이 분리될 경우 마케팅이라는 측면에서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고있을 것이다. 

빙상연맹의 피겨 홀대니 피겨에 대한 전문적 행정적 지원이니 하는 명분은 '마케팅과 돈' 그 다음의 문제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감수하고 한국 피겨를 지켜온 원로들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한국 피겨의 역사는 김연아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도 있을 정도로 한국 피겨에 있어 김연아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런 점에서 원로 피겨인들이 김연아의 존재와 그로 인해 촉발된 현재의 피겨붐을 보며 느끼는 감회는 무척이나 특별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특별한 감회의 표출이 '한풀이용' 내지 '밥그릇 독차지용' 피겨 연맹 분리 독립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피겨는 물론 모든 빙상 종목이 인기 스포츠로 발돋움할 수 있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만행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김연아의 등장 이전 동계올림픽 무대에서 명함조차 내밀 수 없었던 피겨와는 달리 금메달을 척척 따내며 한국을 동계스포츠 강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쇼트트랙이나 스피드 부문 때문에 피겨가 빙상연맹 내부에서 다소 소외됐었다는 사실은 굳이 당사자들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피겨의 발전이 더뎌지고 어려웠다면, 그래서 피겨 연맹의 분리 독립이 필요했다면 현재처럼 피겨붐이 일기 전에 분리 독립을 추진했어야 한다. 그랬어야 진정성에 의심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피겨가 돈이 된다'는 현재의 분위기 속에서 피겨 연맹의 분리 독립을 추진한다는 것은 결국 그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필자는 피겨와 다른 빙상 종목들을 분리해서 연맹이 운영되는 나라는 몇 나라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참고로 미국과 러시아는 피겨 스케이팅을 관장하는 독립적인 기구를 운영중이다.) 피겨 부분의 국제대회나 각종 행정을 담당하는 기구가 국제빙상경기연맹(ISU)으로서 ISU가 피겨를 비롯한 스피드, 쇼트트랙을 모두 관장하고 있는데서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는 문제다.

이미 오랜 세월 이어진 스포츠로서 전세계적으로 그 틀이 어느 정도 정형화 되어있는 빙상이라는 스포츠에 세계적으로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자체는 분명 '비정상'이다.  빙상연맹의 피겨에 대한 행정적 지원이나 인사정책이 마음에 안들었다면 지금부터 차근차근 논의하면서 고쳐나가면 될 일이다.

앞서도 언급했듯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감수하고 묵묵히 한국 피겨를 지켜온 원로들의 원로다운 행보를 기대해 본다. 아울러 빙상연맹도 원로들이 그동안 겪었던 아픔이 무엇이었는지, 피겨팬들이 빙상연맹에 가져왔던 불만과 비판적 시각이 어떤 부분에서 비롯됐는지 진지하게 살피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