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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칼럼 해설위원/성민수 라스트라운드

해설자로서 다른 길을 찾아야 했던 이유



[성민수의 라스트 라운드] 다소 의외의 길을 가는 필자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있는 분이 계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귀한 지면을 낭비하면서 다소 부연설명을 드려볼까 한다.

방송사와는 별 트러블이나 불만은 없다. 10년 째 해설이고 어차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별 자질도 없는 이를 써주는 방송사들엔 언제나 고마운 마음뿐이다. 이런 인연을 통해 생활비와 학비를 보충했으니까.

사실 기사에서 격투기 해설자라고 나가는 것은 부담스럽다. 현재도 프로레슬링만 해설할 뿐이고 격투기는 초기엔 기회가 있었으나 고사했으며 나중엔 대타처럼 들어갔으나 그것도 제작진의 급한 사정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경우였을 뿐이니까.

일반적으론 격투기나 프로레슬링이나 그게 그거란 인식일 것으로 본다. 종합격투기라고 이야기해도 이종격투기라는 이름이 쓰이고 아직도 나에겐 프로레슬링 승부가 조작된 것이냐고 묻는 이들이 있으니까. 어차피 그건 남의 분야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일 뿐, 별 문제 삼을 건 아니다. 내가 크리켓의 규칙을 모른다고 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듯. 그래서 격투기 해설자라고 쓰이는 듯하다.

한 분야를 파고들고 싶긴 하다. 허나 해설자라는 타이틀은 프로그램에 얹혀있는 사람이다. 어차피 주인공은 선수가 되어야 한다. 지금 난 해설과 번역 및 글쓰기를 맡고 있기에 어느 정도 밥벌이는 하나 만약 프로그램이 폐지가 되면 아르바이트가 끊기듯 갑자기 생활이 막막해질 것이다. 이는 대부분 해설자가 갖고 있는 딜레마이나 그렇다고 해서 방송사에게 해결책을 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런 것이 싫으면 알아서 본인이 업종을 찾아가면 그만이고 그런 조건을 알면서도 일하니까. 게다가 주인공인 선수들에 비해서 조건이 나을 수도 있으니 스타가 아닌 입장에서 나만을 챙기라고 할 수 없으며 같이 고생하는 방송제작진들을 고려한다면 적당한 선에서 일하는 게 서로를 위한 길이라 본다.
그건 그렇지만 해설로만 생업을 영위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그 분야의 전문가일 뿐이기에 불러줄 다른 방송도 없으며 어떤 가수들은 밤무대는 안 나간다고 하지만 나의 입장에선 불러만 줘도 황송할 것이나 부르는 곳도 없다. 어차피 나도 나같은 사람을 무대에서 보면 분노를 느낄 것이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방송이 별로 많지 않기에 일주일에 한 두차례 녹화를 빼면 방송준비를 제외하곤 업무에 얽힐 일이 사실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회사에선 해설을 계속하는 것이 여의치 않자 해설을 관두는 것보단 새로운 변신을 모색하겠다는 생각에 퇴사 후 의료쪽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해외에선 선수와 의료인간의 관계가 밀접한 것이 이런 진로를 택한 동기였다. 닥터 쁘띠라는 의료인과 치과의사 마이크 라노의 소식을 접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살 수 있는 길이 많지 않다는 것은 그렇게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고 세상과 싸우기보단 세상에 적응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신 적게나마 인정받는 일은 계속 할 뿐이고. 필자는 지극히 운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아직 고민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성공하든 실패하든 여하튼 계획대론 갔으니까.

문제는 있다. 나는 조연으로서 또 다른 조연자리를 찾아냈을 뿐이지만 정작 무대의 주인공들의 딜레마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야구의 약진과 달리 필자가 글을 쓰는 분야는 오히려 2010년이 과거에 비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마나 작게 대회들이 부활한다고 하지만 방송사와 연계된 대회라는 비전은 아직 불투명하다. XPORTS도 없어졌고 케이블 채널들은 야구를 제외하곤 그다지 스포츠에 관심이 많지 않으며 월드컵은 타 분야에겐 압박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해받을까봐 두렵다. ‘얼마나 안 되면 해설자도 도망가는데...’라고 보는 인식이다. 사실 그건 아니다. 입시에 학업 6년까지 총 7년이 소요된 과정이었기에 갑작스러운 변신도 아니었으니까. 어린 시절 꿈은 건축가 아니면 의사였기에 세월을 역행했을 뿐이다.

해설자로서 타 분야를 병행하는 분들은 많다. 이에 필자의 상황을 조연이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연으로서 자리 잡았다고 봐주시면 정말 좋겠다. 그리고 무대의 주인공인 선수들이 필자같이 정신없는 삶을 살지 않는 좋은 환경이 꼭 이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