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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대표팀, 아직은 외국인 감독이 필요해 보이는 이유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동아시아대회에서 지난 32년간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었는 중국에게 패함으로써 한국 축구사에 새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0-3 이라는 스코어도 놀라웠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스페인을 돌며 손발을 맞춰던 선수들이 경기 내용적인 면에서 중국 대표팀에 압도 당하는 모습을 노출했다는 점도 충격적이었다.

경기 직후 국내 전문가들은 중국전 패배에 대한 이런 저런 원인분석을 내놓았고, 네티즌들은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로 몰려가 대표팀의 졸전을 비판하는 한편 허정무 감독에게도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 12일 아침 TV 뉴스를 통해 허정무 감독의 인터뷰를 접할 수 있었다. 허 감독은 인터뷰에서 중국전 패인에 대해 설명한 뒤 비록 한국이 중국에 졌지만 남아공 월드컵으로 가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여러가지 일 가운데 하나일 뿐임을 강조하면서 지나친 비판여론에 대해 불만어린 모습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여전히 드는 생각은 아직 한국 축구는, 아니 적어도 월드컵을 준비하는 대표팀에는 외국인 감독을 기용하는 것이 나았을 뻔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갖게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이유가 대표팀 감독을 외국인 명장이 아닌 국내 지도자가 맡다 보니 언론과 대표팀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갖기가 무척이나 어려워졌고, 그로인 해 대표팀을 둘러싼 불필요한 말들과 논란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너무 일찍 말이다.

외국인 감독 같았으면 언어 문제 때문에라도 기자들 가운데 일부는 '과묵함'을 유지할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대표팀이 훈련을 하건 평가전을 하건 어디서 밥을 먹건 대표팀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에게 기자들은 엄청난 양의 질문을 쏟아내고 엄청난 양의 기사를 쏟아낸다.

이런 기사들 가운데는 현재 대표팀에서 굳이 논란이 되지 않아도 될 문제 내지 전력 보강이라는 측면에서 우선 순위에 들지 않는 문제들이 부각이 되어 쓸데없는 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허정무 감독의 이동국에 대한 공개 지적과 그로 인한 불화설이었다. 허 감독의 입장에서 보면 이동국의 기량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냥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하면 그 뿐이다. 그 전에는 다른 선수들과 동일한 수준의 언급 정도에서 그쳐야 했지만 허 감독은 인터뷰 때마다 이동국에 대해 물어보는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스스로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서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 중국전 참패의 과정에서 드러났듯 대표팀의 전력에서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이 단순히 이동국의 문제 뿐이었나? 그건 아니었다. 공격전술 전반에 문제가 있었고, 특히 수비 조직력은 최악이었다. 이동국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던 그 기간중에 허정무호의 중앙 수비 조합이라든지 전체적인 수비 전술에 대한 논쟁도 벌어졌었나? 모두가 알고 있듯 그렇지 않았다.

언론과 대표팀의 스킨십이 늘어났는데 그 결과는 대표팀 전력 극대화를 위한 생산적인 논의 보다는 특정 선수에 대한 논란이나 가십성 기사들로 넘쳐나는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물론 과거 거스 히딩크 감독 시절 대표팀이 2002 한일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체코나 프랑스에게 잇따라 0-5로 패하는 등 졸전을 거듭하고 특정 대회에 참가하는 기간동안에도 강도높은 체력훈련을 하는데 대해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이내 사그러들었었고, 핌 베어백 감독 시절에도 대표팀 선수 차출 문제로 프로구단들과 베어백 감독이 갈등을 빚은 문제에 대해 논란이 일었지만 그런 논란도 오래 가지는 않았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국내 지도자인 허정무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이번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에 대한 여러 논란은 이전의 외국인 감독 체제 하에서의 대표팀의 경우와 비교할 때 양적으로도 많지만 질적으로도 매우 지속적이고 비생산적이라는데 문제가 있어 보인다.

물론 허정무 감독과 언론의 매우 친밀한(?) 관계 때문에 허 감독은 지난 32년 동안 한 번도 지지 않았던 상대인 중국에 지고도 언론으로부터는 그다지 심한 질타를 받지는 않았고, 그 이전에 다른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언론은 적당히 허 감독에게 빠져나갈 길을 확보해 주곤 했다. 그게 국내 지도자가 대표팀 감독을 맡아서 가질 수 있는 장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취재원과 언론의 비판적 거리가 유지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생산적인 결과물을 기대하기에는 이런 행태가 도움이 될리 없다.

무엇보다 이런식으로 국내 지도자가 언론과 적당한 밀월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대표팀의 부진한 성적에 대한 언론의 비난은 무마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팬들의 눈을 속이기는 어렵고, 더 나아가 팬들로 하여금 대표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더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중국전 패배를 두고 허정무 감독이 나름대로 차분하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음에도 팬들은 허 감독의 분석을 그저 '비겁한 변명'으로 치부해버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서도 잘 드러난다.

언론에 대한 문제 뿐 아니라 선수의 발탁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도 아직은 외국인 감독이 국내 지도자 보다는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허 감독은 국내 축구 사정에 대해 분명 풍부한 식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유망주를 발굴하는 능력도 탁월한 지도자다. 그러나 그렇게 한국 축구와 선수들에 대한 정보가 많고 그들에 대한 나름의 정리가 머리속에 되어 있다 보니 특정 선수에 대한 선입견이 선수 발탁에 있어 필요 이상으로 크게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한 마디로 개별 선수의 현재의 기량과는 관계없는 선입견이 많고 그에 따른 좋고 싫음이 너무나 분명하다는 말이다. 이런 부분은 허 감독이 개인적인 성향이나 지도자로서의 자질에 문제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한국 축구판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갖게된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한다면 우리가 과거에 경험해 봤듯 외국인 감독은 국내 지도자들보다 한국 축구에 대한 세세한 정보력에는 부족한 면이 있지만 선수들의 기량에 관한한 '보이는 것에 대한 믿음'에 충실하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중시되고, 한 사람만 거치면 거의 모두가 선후배로 연결될 뿐 아니라 그런 선후배 사이가 끈끈하기 까지 한 국내 스포츠계에서 선수 선발에 대해 선입견도 없고, 학연, 지연과 같은 연고에 대한 부담 없이 선수를 뽑을 수 있는 위치. 그것은 사실상 외국인 감독 외에는 가질 수 없는 메리트인 셈이다.

어찌되었든 남아공 월드컵으로 가는 대표팀의 감독은 허정무 감독이고, 앞으로 대표팀에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감독이 바뀌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축구협회가 앞으로 남아공 월드컵 이후 새로운 성인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게 된다면 외국인 감독의 선임 쪽에 좀 더 무게감을 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