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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무관심이 금메달리스트를 만든다?



한국을 동계 올림픽 사상 최초로 스피드 스케이팅 남녀 500m 종목에서 동반 우승한 국가로 만든 모태범과 이상화의 인터뷰 내용 가운데 언론의 무관심에 관한 언급은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선수들에게 운명과도 같은 이벤트를 앞두고 메달 획득이 유력시 되는 선수들에 대한 언론의 관심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팀의 막내인 모태범은 이번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어떤 언론으로부터도 메달 유망주로 거론된 적이 없는 '무명의 막내'였다. 그러나 그는 '맏형' 이규혁과 세계랭킹 1위 이강석이 주춤하는 사이 거침없는 레이스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태릉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때 아무도 나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오기가 생겼다. 언론의 무관심이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밝힌바 있다.

결국 언론의 무관심이 모태범의 자존심과 오기를 자극하는 한편 잡념이나 부담감 없이 훈련과 실전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상화의 인터뷰에서도 그런 내용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이상화는 모태범에 비한다면 엄청난(?) 스타이기는 하나 이상화 본인의 말처럼 월드컵 대회나 세계 스프린터 선수권대회 같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에서 우승을 해도 김연아가 어느 그랑프리 대회에서 우승이라도 할라치면 곧바로 언론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상화의 언급 자체는 얼핏 들으면 언론에 대한 서운함을 내비친 것으로도 들리지만 한편으로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김연아에 집중되어 있는 언론의 태도 덕분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상태에서 기록 단축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이상화가 본의 아니게 실명을 거론한 주인공으로 국내 언론 뿐 아니라 전세계 언론으로부터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 전체의 흥행을 책임지고 있는 선수로서 인정받고 있는 '피겨 여제' 김연아에게 이와 같은 언론의 엄청난 관심이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김연아가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우승하기 위해 유일하게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심리적 부담을 극복하는 일'이라고 말하는데서도 볼 수 있듯 김연아에게 집중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김연아에게 긍정적인 영향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김연아의 동계올림픽 금메달 획득을 바라는 팬들 입장에서 보면 적어도 국내 언론 만큼은 김연아에 대한 관심을 좀 덜 보여도 되지 않을까? 만약 어떤 언론사의 기자가 김연아에 대한 취재를 살살 하자고 데스크에 제안한다면 돌아오는 대답은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사표 쓸래?' 뭐 이런 대답이 돌아올 것으로 예상해도 그 결과가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김연아가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후보가 맞는 이상, 그가 동계올림픽 최고의 뉴스메이커로 지목된 이상 기자들은 써야하고 그런 관심에 따른 부담을 극복하고 금메달을 따내야 하는 것은 온전히 김연아의 몫인 셈이다. 그 결과가 모든 이들의 기대와 다른 결과로 이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과거 언론들이 양궁이나 태권도, 유도 같은 전통적인 강세 종목에서 올림픽 금메달 획득을 기정 사실로 보도하던 선수들이 실제 올림픽 무대에서 무명의 후배에 밀려나거나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던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이때도 금메달 후보에서 노메달의 불명예를 안은 선수들이 스스로 분석한 부진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언론의 지나친 관심'이었다. 금메달리스트 후보로 거론되며 언론의 관심을 받은 선수가 실제로 금메달까지 따 준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 관심이 독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어떤 기자가 유력한 금메달 후보에 대한 기대섞인 전망 기사를 내보냈을 때 기사 밑에 '이런 기사 때문에 선수가 더 부담을 갖는다. 언론이 잠자코 있어주는게 도와주는거다'라고 힐난하는 댓글을 발견한다면 그 기자는 어떻게 반응할까?

아마도 그는 혼잣말로 '그럼 난 노니? 놀아?' 라고 중얼거릴 것이다. 그렇다. 기자가 선수가 받을 부담 때문에 마냥 놀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금메달리스트 후보에 대해 미리 관심을 가지고 보도를 하자니 일생 일대의 중요한 순간에 마주선 선수에게 괜한 부담을 줄 것 같고, 안쓰자니 기자로서 본연의 임무를 방기한다는 자괴감에 시달릴 것이 뻔한 이런 딜레마 속에 기자들은 빠져 지내는 셈이다. 

정말로 언론의 적극적인 관심은 유망주들에게 부담을 줄 뿐이고 무관심이 오히려 금메달리스트를 만드는데 더 도움이 되는 것일까? 

모태범의 경우는 스스로도 언급했듯이 언론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했던 서운함에 오기가 발동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금메달까지 따냈다는 점에서 언론의 무관심이 그의 성취에 일정 부분 도움을 준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 선수가 이뤄낸 위업을 모두 설명할 수는 있을까?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언론의 무관심이 메달 획득의 주된 원동력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예상치 못한 금메달리스트의 출현에 대해 '이변' 내지 '무명의 반란'이라고 표현하지만 정작 그런 결과는 선수 본인이 그동안 기울인 피땀나는 노력을 통해 스스로 그런 위업을 달성할 수준에 까지 올랐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고, 언론 또한 그런 사실을 몰랐던 상태에서 결정적인 순간 그런 능력이 발현되는 것을 함께 확인한 것일 뿐 전혀 엉뚱한 결과는 아니며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결과라고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