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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재, 허정무호 '부동의 주전' 입지 흔들리나

프로축구 K리그 최고의 '빅카드'인 FC서울과 수원삼성의 상암벌 혈투가 3-1 서울의 완승으로 막을 내렸다.

서울은 4일 오후  홈구장인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과의 2010 K리그 경기에서 데얀의 '어시스트 해트트릭'과 에스테베스, 정조국, 최효진의 골 퍼레이드에 힘입어 강민수가 한 골을 만회하는데 그친 수원을 두 골차로 제압했다.

4만8천558명의 구름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이날의 경기는 경기결과는 물론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표를 1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양 팀에 속한 최종엔트리 후보들의 기량과 컨디션을 점검하러 온 대표팀의 허정무 감독이 경기 관전 후 최종 엔트리 구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될 것인지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실제로 이날 관중석에는 허정무 감독과 김현태 코치가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아 선수들이 움직임을 살폈다.

결국 경기는 전반전에만 세 골을 터뜨린 서울의 3-1 완승으로 끝났고 승자와 패자의 명암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승패는 갈렸고, 승자와 패자의 명암은 엇갈렸지만 대표급 선수들의 플레이는 서울과 수원 공히 전반적으로 무난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서울과 수원의 골키퍼로 나선 김용대와 이운재는 승패의 명암도 명암이었지만 이날 보여준 두 선수의 활약은 여러가지 기량적 측면에서 볼 때 그동안 허정무호의 주전 자리를 확고하게 지켜온 이운재의 '유일 주전'의 구도에 변화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에 충분할 만큼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날 전반 24분에 터진 서울의 선제골 장면을 복기하자면 서울의 데얀이 수원 오른쪽 측면에서 두 명의 수원 수비수의 협력수비를 단숨에 벗겨내는 절묘한 힐패스를 에스테베스에게 연결했고, 데얀의 패스를 받은 에스테베스는 오른발 슈팅으로 수원의 골망을 흔들었다. 이운재와 수원의 최종 수비수가 팔과 발을 뻗어 봤지만 에스테베스가 슈팅한 공은 그 사이를 저묘하게 뚫어내며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 장면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이운재가 좀 더 앞선 판단으로 적절히 에스테베스의 슈팅 각도를 줄여주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서울의 선제골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인 전반 27분 서울의 추가골이 터졌다. 이 장면의 주인공은 골을 터뜨린 정조국이 아닌 수원의 골키퍼 이운재였다.

이운재가 페널티지역 안쪽에서 강하게 찬 공이 실축이 되면서 이운재와 가까운 곳에 서있던 정조국이 헤딩할 만큼 낮게 날아갔고, 정조국은 이운재가 찬 공을 그대로 헤딩으로 오른쪽의 데얀에게 연결했다. 이때 이운재가 데얀과 마주섰고, 데얀은 곧바로 '무인지경'의 정조국에게 다시 패스, 이를 정조국이 침착하게 차 넣고 골 세리머니를 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이 이운재가 서울에게 골을 헌납하다시피 한 명백한 실책이었다.


그리고 5분 후 이운재는 수원 페널티 지역 오른쪽에서 데얀의 힐킥 패스를 받은 최효진의 오른발 슈팅을 겨드랑이 사이로 빠뜨려 세 번째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1차적으로는 너무나 쉽게 데얀-최효진으로 연결되는 패스길을 차단하지 못한 수원의 측면 수비에 책임이 있지만 이때도 이운재의 방어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었다.

전반전에만 세 골을 허용한 이운재는 망연자실 그 자체였다. 문제는 골을 허용하는 장면 뿐 아니라 전반전 여러 순간 이운재의 볼 키핑은 불안한 감을 노출했다.

이운재와 대조적으로 김용대의 플레이는 순발력, 판단력, 안정감 등 골키퍼로서의 모든 면에서 이운재를 압도했다.
후반 2분만에 코너킥 세트피스 상황에서 수원의 수비수 강민수에게 만회골을 허용했지만 골을 허용하는 과정에서 코너킥에 이은 수원 공격수의 첫 헤딩 슈팅을 엉겁결이기는 하나 막아냈고, 다른 여러 장면에서도 안정감 있는 모습과 '슈퍼 세이브'를 보여줬다.


어쩌면 이날 이운재는 허정무 감독의 관심 밖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운재 보다 허정무 감독이 체크해야 할 선수들이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이운재의 부진한 경기력은 허정무 감독으로 하여금 필드 플레이어 뿐 아니라 골키퍼 포지션도 고민의 대상임을 새로이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지난 1994년 미국월드컵을 되돌아보자면 당시 한국 대표팀의 확고한 주전 골키퍼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와 같은 최인영 골키퍼였다.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독일전을 앞두고 한국은 '무적함대' 스페인과 2-2 무승부, 볼리비아와 0-0 무승부를 기록, 무패의 성적으로 16강 진출의 희망이 남은 상황이었지만 독일전에서 전반전에만 세 골을 허용함으로써 후반전에서의 대공세에도 불구하고 2-3으로 분패, 결국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이 그날 독일에게 전반전에만 빼앗긴 세 골 가운데는 최인영의 실책성 플레이에 기인한 골도 섞여 있었다. 의심할 여지 없었던 대표팀 붙박이 주전 골키퍼가 그렇게 허무하게 연거푸 골을 허용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전반전을 그렇게 끝낸 최인영은 결국 후반전에 기용되지 못했고, 최인영을 대신해 한국의 골문을 지킨 주인공은 당시 21살의 어린 골키퍼 이운재였다. 

적어도 국가대표로서 1994년의 최인영이나 2010년 현재의 이운재의 입지는 많이 닮아 있다. 남아공 월드컵을 2개월여 앞둔 지금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에 빛나는 이운재의 경험이 훌륭하다고는 하나 최고의 기량이 뒷받침 되지 못하는 가운데 경험이 모든 약점을 보완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울과 수원의 경기를 관전한 직후 허정무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운재에 대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를 함께 치르느라 피로가 쌓인 것 같다."면서도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경기를 계속 지켜봐야 하지만 경기력을 빨리 회복해야 한다. 경기력 떨어지는 상황이 염려스럽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김현태 골키퍼 코치 역시 "평소 이운재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데 아무리 1대1 상황이라도 막아줄 수 있는 부분이 필요했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일단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공개적인 인터뷰를 통해 이운재의 경기력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염려'를 표시했다는 것 자체가 이운재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시사하는 것으로서 그동안 경쟁도 실험도 없다시피 했던  대표팀 내 주전 골키퍼 자리에 대한 판도에 변화가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