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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파문의 당사자들이 꼭 알아둬야 할 사실




지난달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끝난 2010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남자 대표팀의 이정수가 본인의 의사에 반해 코치의 강압에 의해 개인전 출전을 포기했다는 주장으로 촉발된 이른바 '쇼트트랙 파문'에 대해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진통끝에 진상조사위원회를 가동한 가운데 논란의 중심에 있는 선수들이 잇따라 상반된 입장을 표명하며 미궁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 2월 끝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2관왕에 올랐지만 그 다음달에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부상으로 개인전 출전을 포기했던 것으로 알려진 이정수는 귀국 이후 대한체육회에서 실시한 감사와 그 이후 자체적으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표선발전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으며, 세계선수권에서는 전재목 코치의 강압에 의해 사유서를 쓰고 개인전 출전을 포기했다고 밝혀 충격을 안겨줬다.

이정수는 지난 13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표팀의 전재목 코치가 대표선발전때 '서로 도우라'라는 말을 했다는데 나는 전혀 들은 바 없다. 3000m 수퍼파이널을 준비하느라 그럴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전 코치는 또한 밴쿠버 동계올림픽서도 1000m에서 곽윤기(연세대)에게 양보하라는 말에 고민했지만 김기훈 감독의 반대로 출전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정수는 이와 함께 빙상연맹에서 구성한 진상조사위원회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가 이른바 '이정수 측 인사'가 진상조사위원회에 합류한 이후 조사에 응했고, 얼마전 전재목 코치와 대질 조사에 응하기도 했다.

여기까지의 상황만을 놓고 보면 이정수는 자신의 주정에 대해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 보일 뿐 아니라 빙상연맹의 묵인하에 자행된 대표선발전에서의 승부조작 사건에 대해 일지 못하는 무고한 선수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정수의 입장에 대해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던 동료 선수들이 내놓은 반응은 이정수의 진심과 결백을 믿고 있던 팬들을 당혹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대표팀의 곽윤기는 지난 14일 <스포츠서울>과의 전화통화에서 "지난해 4월 대표 선발전 1000m 준결승을 앞두고 대표팀 전재목 코치가 나에게 '(이)정수가 나를 찾아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정수를 도와주라'고 말했고, 고민하다가 수락했다. 1000m에서 이정수가 넘어질 뻔 했지만 내가 잡아줬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올림픽 이전까지 정수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올림픽 때 정수가 약속을 안 지켰다. 솔직히 나는 내가 개인전 전 종목을 다 타게 될 줄 알았다"며 "올림픽 1000m를 앞두고 정수가 '내가 타겠다'고 해서 솔직히 좀 황당했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해 4월에 있었던 대표 선발전에서 곽윤기는 이정수와 직접 말을 섞지는 않았지만 이정수를 도우라는 전재목 코치의 제안 내지 지시를 수용했고, 동계올림픽에서 1,000m 경기에서 이정수의 양보 내지 약속 이행을 기대했지만 기대와는 다른 결과에 당황스러운 상황을 경험했다는 주장을 편 셈이다. 

이처럼 이정수와 곽윤기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성시백이 곽윤기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성시백은 지난 18일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에 '이정수는 과연 1000m 준결승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았나'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올리면서 '한 쪽만 보지 마시고 이런 영상도 봐주셨으면 합니다. 빙상 문제가 빨리 해결됐으면 하는 선수 입장에서 올린 겁니다. 마지막 바퀴에서 휘청하면서 넘어지려던 이정수를 받쳐주는 곽윤기의 손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곽윤기가 이정수를 도와주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절호의 기회에 치고 나가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성시백의 주장은 '짬짜미 담합'의 실체를 부정한 이정수의 주장이 거짓이며 지난해 대표선발전에서 이른바 '짬짜미 담합'이 이루어졌음을 인정하는 한편 이정수도 '짬짜미 담합'의 가담자임을 분명히 한 주장인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정수에게 개인전 출전 포기를 강요한 것으로 알려진 전재목 대표팀 코치가 곽윤기와 함께 '짬짜미 담합'의 실체를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또 다시 충격을 안겨줬다.

전 코치는 20일 오후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대표선발전 1,000m 준결승을 앞두고 선발전 점수를 전혀 못 땄던 이정수가 '도와달라'고 부탁해 곽윤기의 동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전 코치에 따르면 곽윤기는 대표선발전에서 종합 순위가 바뀌면 올림픽 개인전에 나가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엔 이정수의 부탁을 거절했으나, 이정수로 부터 개인종목을 양보하겠다'고 말해 이정수의 도움 요청을 수락했고, 실제 경기에서 도움을 줬지만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이정수가 '선발전 때의 약속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을 바꾸고 출전을 강행하며 약속이 틀어졌다는 것.

이날 전재목 코치와 기자회견에 나온 곽윤기도 "선생님 지시를 받고 뒤 선수를 가리는 경기 운영을 했다. 넘어질 뻔했던 상황에서 보듯, 지시가 없었다면 이정수도 추월할 수 있었다"고 말해 전코치의 주장을 뒷받침 했다.

이는 그동안 이정수가 부당한 압력의 피해자 내지 쇼트트랙 대표팀 내부의 부조리를 고발한 의로운 내부고발자라는 입장을 견지하며 이정수에게 지지를 보내온 팬들을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아직도 많은 팬들은 전재목 코치와 곽윤기, 그리고 성시백이 빙상연맹의 사주를 받고 이정수의 주장과 상반된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많은 팬들이 관련자 모두에게 '똑같은 XX들'이라며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은 이정수와 곽윤기, 그리고 성시백의 잇따른 입장 표명을 지켜보며 과연 이번 쇼트트랙을 둘러싼 논란과 의혹에 대해 빙상연맹의 진상조사위원회가 과연 실체적인 진실을 밝히는 일이 가능하기는 한 일인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팬들은 이번 사태의 전개가 세계선수권에서 이정수가 강압적인 지시에 의해 개인전 출전을 포기한 것이 맞는지 여부에 촛점이 맞추어지지 않고 지난해 대표선발전에서 실제로 '짬짜미 담합'이 이루어졌는지 여부에 포커스가 맞춰지는데 불만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 한 편으로는 강압이 됐든, 승부조작이 됐든 그 배후에 빙상연맹의 고위 관계자가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는지 여부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은 태생적으로 진실규명에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설령 진실을 밝힌다고 해도 그 내용을 그대로 공표하기는 어려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면 조사결과 어떤 방향으로 결론이 나든 거짓말을 한 쪽으로 지목되는 쪽은 그야말로 쇼트트랙계를 영원히 떠나야 할 만큼 치명상을 입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대상은 감독, 코치, 연맹 관계자는 물론이고 선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팬들은 이정수가 강압에 의해 세계선수권 개인전을 포기했다는 사실과 이 문제에 빙상연맹의 고위관계자들이 연루된 사실이 밝혀져 그 책임자들이 일벌백계로 다스려지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자면 누가 누구를 잘못했다고 판정하고 단죄하기에는 상황이 복잡할 뿐 아니라 서로 얽혀있는 부분이 너무 많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고, 그런 이유로 어느쪽이 확실한 '승자'가 되기도 어려워 보인다. 또한 논란의 당사자가 스스로를 조사하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를 지닌 빙상연맹의 진상조사위원회가 제대로 된 조사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선수들을 비롯한 논란의 당사자들 가운데 어느 쪽의 말이 진실로 결론이 나서 '승자'가 되더라도 이번 사태는 어차피 진정한 승자는 없는 패배자만이 남는 게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이유로 진상조사위원회가 어정쩡한 조사결과를 발표할 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조사를 진행하는 측이나 조사에 응하는 측 모두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팬들이 빙상계 스스로 자정작용을 할 수 있도록 내어 준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 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번 조사가 당사자들의 미온적인 협조로 인해, 또는 조사위원회의 의지가 결여된 조사로 인해 거품빠진 맥주와 같은 결과로 나타난다면 이번 사태는 결코 그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며, 정부나 국회가 직접 나서는 양상으로 확대될 것이다. 어쩌면 쇼트트랙 파문에 관한 국회 청문회가 TV를 통해 방영될 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도 쇼트트랙이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적인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그나마 잠깐씩이나마 받아왔던 미디어로부터의 스포트라이트나 국민의 관심과 사랑 같은 것을 앞으로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