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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칼럼 해설위원/성민수 라스트라운드

대한민국 격투가들도 국위선양을 하고 있다


최근 월드컵을 비롯한 국제 대회를 통해서 ‘국위선양’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이번 월드컵에선 파라과이 응원녀가 가장 많이 기억에 남으니 그녀가 국위선양을 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객관성을 잠시 망각한 필자만의 생각이니 넘어가기로 하자.

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이란 건 굉장히 자의적일 수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주목하는 스포츠를 해외에서 다 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마라톤 세계 최고 기록은 어느 나라의 누가 갖고 있는지 물어본다면 우리나라의 대부분이 잘 모를 것이며 영국 연방에서 주로 하는 크리켓은 몇 사람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알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게 사실 큰 문제는 아니다. 스포츠나 드라마, 영화 같은 것을 유희의 하나로 접근할 뿐, 당연히 생업이 먼저이니까. 이에 우리나라의 월드컵 4강은 해외의 축구팬들에게, 야구 WBC에서의 맹활약은 해외 야구팬들에게 각인이 될 수밖에 없으며 미국 복싱이 사상 최고의 흥행을 준비하고 있어도 우리나라 일반 팬들에겐 관심권 밖인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격투가들도 어쩌면 격투기 팬들이란 경계에서만 움직이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숫자는 적지 않고 젊은 층이 주로 많으니 절대로 간과할 수 없다.

그간 서양 격투기 팬들은 아시아 선수들을 다소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인종차별이 아니라 표면적으로 보이는 타이틀 부근의 선수가 부족하고 좀 더 깊게 알더라도 일본 선수들이 미국에서 실패한 일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오키 신야는 미국 2위 단체 스트라이크 포스에서 경기를 갖았지만 미국 팬들은 그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위기였기에 경기장 내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아오키 신야가 그간 일본에서 보인 극강의 그래플링을 성공시켰다면 팬들은 달라졌겠지만 계속 밀리면서 패했고, 경기 후엔 눈물을 흘리면서 일본은 미국 격투기의 식민지라는 발언을 한 뒤 자국 동료들은 분노케 만들면서 경기도 잃고 동료들과도 더욱 멀어졌다.

한 때 동체급 세계 최강이라 꼽히던 고미 다카노리는 UFC가 노력한 끝에 TV도쿄의 중계권을 확보해 새로운 흥행을 도모했으나 케니 플로리언에게 패하면서 빛이 바랬고 고노 아키히로, 나카무라 카즈히로, 초난 료 같은 쟁쟁한 이름의 선수들 역시 UFC에서 퇴출되면서 아시아의 강자들이 별 볼일 없다는 편견만 심고 말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김동현 선수의 연승과 정찬성 선수의 투지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들의 선전이 미국 팬들에게도 각인되면서 동양 선수는 약하다는 주장이 나오면 적어도 코리안은 강하다는 반론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름이 익숙하지 않아서 ‘킴’이나 ‘좀비’ 정도로만 언급되나 이벤트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그들의 존재는 알고 있으며 평가가 좋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들이 길을 잘 닦은 덕에 양동이 선수도 UFC와 계약을 했고 점점 코리안에 대한 수요는 브라질 선수들처럼 늘지 않을까 싶다.

그들이 어필하는 대상은 전 세계 인구 모두는 아니겠지만 격투기라는 한 분야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고, 그 문화를 향유하는 숫자는 결코 무시할 정도가 아니다. 이에 대한민국 격투가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이란 맥락에서 본다면 확실히 그 제의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