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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협회의 부적절한 '포스트 허정무' 여론 떠보기

대한축구협회가 새로운 축구 대표팀 감독 선임을 놓고 벌이는 여론 떠보기가 불편하다.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 예상대로 뻔한 스토리로 흘러가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지난 1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축구협회 고위 관계자는 이날 "지난주 12-13명의 전·현직 감독들을 후보 리스트에 올렸던 기술위원회가 최근 5명으로 후보자를 좁혔다"며 "최강희(전북), 조광래(경남), 황선홍(부산), 김호곤(울산), 정해성(전 대표팀 수석코치) 등 5명이 최종 후보군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선일보가 15일 복수의 축구협회 관계자의 말임을 밝히며 축구협회가 일차적으로 6명 정도로 범위를 좁힌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대상은 김호곤(울산), 조광래(경남), 최강희(전북), 황선홍(부산) 감독과 정해성 전 대표팀 코치, 김학범 전 성남 감독 등이라고 전했다.

불과 하루 이틀 전까지만 하더라도 기술위원들이 허정무 전 감독과 정해성 코치의 고사에 따른 후속 대책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듯 하여 새 사령탑 선임을 위한 기술위원회를 일주일 후로 미룬다고 알려졌지만 내부적으로 이미 최종 후보자들은 압축해 놓은 셈이다. 

어찌보면 참으로 능력있는 축구협회다. 12-13명에 달하는 지도자들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감독직 수락 가능성에 대한 타진을 불과 일주일만에 해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현재 압축됐다는 이들 5명 가운데 신임 감독이 결정될 지 알 수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떻게 보안이 생명인 감독 선임 과정이 이렇게 쉽게 공개될 수 있었을까?

결국 이와 같은 일련의 상황을 놓고 볼때 축구협회는 이들 5명의 후보자들을 언론에 넌즈시 흘려 1차적으로 간을 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축구협회의 바람대로 벌써부터 대표팀 감독직이 조광래-김호곤 2강 구도로 압축됐다거나, 이들 5-6명의 후보들을 놓고 장단점을 분석하는 보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축구협회의 감독 선임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마치 정치권에서 총리나 장관 인사를 할 때 이런 저런 사람들을 언론에 흘려 여론의 반응을 떠보는 것과 흡사하다고 느껴진다.

전임 축구협회장님께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 회장님으로서 집권 여당의 최고위원을 지내시고, 장차 차기 대권에 대한 야심을 가진 분이라 축구협회도 정치권에서 하는 행태를 학습한 결과인지는 모르겠으나 축구 대표팀 감독 선임을 놓고 벌이는 이와 같은 여론 떠보기 행태는 분명 떳떳한 태도는 아니다.

과거의 사례를 떠올려 본다면 이후의 상황도 대략 예측이 가능하다.

이들에 대한 여론의 방향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축구협회 고위 인사를 칭하는 그 누군가가 나서서 "후보군 5명 압축 보도는 오보"라며 진화에 나서는 한편 다른 후보자들의 이름을 또 다시 흘려가며 여론의 눈치를 살필 것이고, 현재 거론된 5명 가운데 누구 한 사람에 여론이 몰리는 경향이 보이면 다음주 기술위원회에서 '요식행위'를 거쳐 새 축구대표팀 사령탑을 결정할 것이다.

부디 이와 같은 뻔한 예측이 틀리기를 바랄 뿐이다. 

사실 축구협회가 미리 '국내파 전현직 K리그 감독 12-13명의 후보'를 신임 대표팀 감독 후보라고 공표한 것 부터가 과오다. 축구협회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힌 셈이기 때문이다.

축구협회에서 내세운 '허정무 감독이 국내파 감독으로서 원정 월드컵 16강을 이뤄냈으니 이제는 국내파 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계속 맡아도 될 것으로 판단했다'는 국내파 신임 감독 선임 원칙의 배경도 궁색했다. 그 내용 안에는 허 감독이 남아공 월드컵에서 뭘 잘했는지 뭘 잘못했는지에 대한 평가가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궁색한 논리로는 축구협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축구팬들이나 전문가들로 부터 국내파 감독 선임에 대한 수긍을 이끌어낼 수 없다.  

과거 축구협회가 욕을 먹었던 사례를 살펴보면 상당 부분이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불거져 나오는 잡음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축구협회 수뇌부가 여전히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해 열린 마인드와 합리적 사고를 펼치지 못하고 있는 점은 개탄스럽다.

축구협회는 지금이라도 새 대표팀 감독 선임에 있어 기술위원회 이외의 전문가들로 부터 폭넓은 의견 수렴을 펼치는 한편 그런 수렴된 의견을 바탕으로 후보군을 압축, 좀 더 면밀하고 차분한 검토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이다.

허정무 전 감독이 남아공 최종 엔트리에 포함될 선수들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언급했던 '호시우보(虎視牛步 / 걸음을 소같이 천천히 하되 호랑이의 눈으로 주변을 살피라)'는 고사성어는 지금 축구협회 기술위원들이 새겨야 할 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