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격투기가 인기를 끌던 2000년대 중반, 당시 마크 커나 마크 콜맨에 대해서 팬들은 그다지 높이 평가하질 않았다. 불과 5년만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이들은 인류 최강을 다투는 이들이었지만 팬들은 알지 못했고 큰 관심도 없었다.
2003년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는 누구도 이길 수 없는 난공불락의 강자였지만 2000년대 중반 노게이라는 넘버 2였다. 당시 우리 팬들에겐 에밀리아넨코 표도르란 절대 강자, 노게이라는 넘버 2였고 미르코 크로캅은 K-1에서 넘어와 정상을 노리는 카리스마 있는 스타였던 것이다. 당시의 이미지가 너무도 강력했기에 6년 뒤의 변화에 많이들 놀란 게 아닌가 싶다.
세월이 흘렀다. 표도르는 2연패에 빠지면서 은퇴 번복을 했고 크로캅은 UFC 128에 프랭크 미어의 대타로 들어왔지만 브랜던 샤웁에게 TKO를 당하고 말았다. 경기 후 브랜던 샤웁은 ‘미르코, 내가 당신을 동경하면서 격투기를 시작했어요!’라는 말을 남겼지만 너무도 씁쓸한 패배가 아닌가 싶다.
이번에 크로캅은 그래도 생각보다 경기를 잘 풀어갔다. 물론 판정까지 간다면 패배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2라운드에 샤웁이 감점을 당하면서 19:18정도로 근소한 차이가 났고 3라운드만 잘 해낸다면 무승부도 가능해 보였다. 2라운드에서도 상대에게 출혈을 일으키면서 만만치 않은 실력을 보였기에 희망도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일본에선 상대들이 킥을 두려워했지만 UFC에선 겁 없이 다가왔고 이제 스피드도 과거와 다르기에 크로캅은 결국 3라운드 3분 44초에 결정타를 맞고 쓰러지면서 UFC 전적 4승 5패, 격투기 통산 27승 9패 2무 1무효를 기록하게 되었다. 3라운드 막판까지 잘 끌고 갔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경기 전부터 크로캅의 승리를 예상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급하게 대타로 들어왔고 이미 은퇴설을 여러 차례 흘렸으며 과거의 기량도 아닌데다가 일본 무대와 달리 UFC는 약한 선수들을 쉽게 주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 브랜던 샤웁은 10세나 어리고 성공에 대한 욕구도 강하며 비록 크로캅을 영웅으로 여겼지만 절대로 물러나지 않겠다고 밝혀왔기에 지난 번 영웅을 상대로 다소 주춤했던 팻 베리와는 다른 양상의 경기를 보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브랜던 샤웁은 크로캅을 하이킥(헤드킥)으로 실신시켰던 가브리엘 곤자가를 3라운드 판정으로 이겼던 전력도 있기에 더욱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크로캅은 패했다. 그것도 매우 처참하게.
그와 반대로 전날 생일이었던 브랜던 샤웁은 영웅을 잡으면서 생일선물을 스스로 챙겼고 ‘오늘의 KO’로 선정되면서 7만 달러의 보너스를 추가적으로 얻었다. 철장 안의 비정함을 다시 한 번 느낀 하루였다. 이거 하나는 아쉽다. 이미 쓰러진 상태의 크로캅을 굳이 때리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확인용으로 한 번 더 가격한 브랜던 샤웁의 공격은 영웅이라고 말하기엔 무척 민망한 공격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 10세 어린 후배이니 경기 중 나올 수 있는 투지로 해석해줄 수도 있겠다.
팬들이 느끼는 공허함은 과거의 영웅들이 무너지는 현실이 아닐까 싶다. 아쉽긴 하지만 이미 전세대 선수들이 가던 길이니 표도르나 크로캅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겠다. 링이 인생의 축소판이란 말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씁쓸한 경기였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