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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의 '축구 정의' 외면, 그리고 '희생양' 앙리


국제축구연맹(FIFA)이 최근 프랑스와 아일랜드간의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유럽 플레이이오프 2차전에서 나온 티에리 앙리의 '신의 손'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오심방지 대책 마련에 대한 세계 축구계의 들끓는 여론을 끝내 외면했다.

외신에 따르면 FIFA는 2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임시 집행위원회에서 내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나올 수 있는 오심을 방지하기 위해 한 경기에 주심과 부심 4명(기존 2명에 양팀 골문 뒷편에 부심을 한 명 씩 더 배치), 대기심 까지 총 6명을 투입하는 이른바 '6심제' 도입을 논의했으나 끝내 내년 월드컵에도 심판수를 현행대로 유지키로 결정했다.

또한 또한 오심 방지 대책 가운데 하나로 제시되고 있던 비디오 판독 도입안에 대해서도 이를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제프 블레터 FIFA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심판 증원에 관한) 실험은 진행 과정에 있어 모든 대륙에서 시험한 다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6심제 도입 유보결정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조별리그 후 16강전 이후의 녹아웃 경기부터는 도입할 지를 놓고 더 논의할 계획”이라고 언급, 남아공 월드컵에서 6심제가 시행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그 대신 FIFA는 프랑스-아일랜드전 당시 앙리가 범한 핸드볼 반칙을 명백한 비신사적 행위로 규정하고 앙리에 대한 징계내용에 대해 FIFA의 자문역에 해당하는 독립규율위원회에 앙리 문제에 대한 의견을 구하기로 했다.

스위스의 법률가 마르셀 마티에르를 위원장으로 하는 독립규율위원회는 특정 단체 및 선수에게 1경기 이상의 A매치 출전정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앙리의 행위가 미친 파장과 사안의 중대성, 그리고 FIFA가 프랑스와 아일랜드의 재경기는 물론 아일랜드의 월드컵 추가 참가를 거부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FIFA 독립규율위원회는 프랑스가 치르는 내년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최소 2경기, 최대는 예선 3경기 전체에 대해 앙리의 출전을 금지시키라는 권고안을 FIFA에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월드컵 본선 대진 그룹 배정에서 시드배정을 받지 못해 우울한 프랑스로서는 앙리 마저 징계를 받게 된다면 천신만고 끝에 아일랜드를 이기고 본선행 티켓을 거머쥔 것이 그야말로 '상처뿐인 영광'이 되는 셈이다.

결국 FIFA는 이른바 '축구 정의(正義)' 실현의 가장 현실적 대안으로 여겨지던 6심제와 비디오 판독의 도입을 모두 무산시킨데 따르는 여론의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앙리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이번 FIFA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오심 방지 대책에 대한 FIFA의 미온적인 태도를 재확인 시켰을 뿐 축구라는 스포츠가 가진 맹점에 대해 합리적인 보완책을 전혀 마련해내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 대목에서 앙리가 FIFA의 뒤통수를 제대로 치면서 스스로는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스스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거나 남아공 월드컵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FIFA나 블레터 회장은 세계 도처에서 심판의 무능력 내지 축구경기의 판정이 가진 맹점으로 인해 빈발하는 오심시비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마련해내지 못한 채 껍데기만 남은 '신사의 스포츠'라는 축구의 이름값만을 붙들고 있는 후안무치한 단체라는 비판와 함께 망신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반면 앙리 개인적으로는 '신의 손' 사건 당시 외면했던 양심과 선수로서의 명예를 뒤늦게나마 지켰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역으로서 생애 마지막 월드컵에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싶은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는 앙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은 바람이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