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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번째 장미전쟁, 부디 이번이 마지막이길

'장미전쟁' 혹은 '붉은 장미의 전쟁'. 상당수의 국내 언론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의 이번 맞대결을 이렇게 지칭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179번째 장미전쟁'이라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절반은 옳고 절반은 틀린 얘기다.

우선 옳은 것은 맨유와 리버풀의 이번 맞대결이 179번째라는 사실이다. 반면, 틀린 것은 이들의 맞대결은 결코 '장미전쟁'이나 '붉은 장미의 전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설명하려면 먼저 '장미전쟁'의 어원에 대해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도대체 '장미전쟁'이란 무엇이며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한 것일까.

'장미전쟁'은 지난 1455년부터 1485년까지 왕권을 둘러싸고 영국에서 벌어진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 사이의 전쟁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헨리 6세와 7세 그리고 튜더 왕조와 같은 명칭이 모두 이때에 등장한다.

이후 영국에는 랭커스터 가문의 이름을 딴 랭커셔 주와 요크 가문의 이름을 딴 요크셔 주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주에는 각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즈 유나이티드라는 팀이 생겨났다.

이들 두 팀은 빨간색(맨유)과 하얀색(맨유)의 유니폼을 착용했는데, 공교롭게도 이는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의 상징인 장미 색깔과도 일치했다. 때문에 축구팬과 현지 언론은 이들 두 팀의 맞대결을 '장미전쟁'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유니폼 색깔이 빨간색과 하얀색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 두 팀은 과거 두 가문의 왕위 쟁탈전을 연상케하는 치열한 라이벌 구도까지도 그대로 재현했었다.

이후 '장미전쟁'은 열성적인 축구팬들에게 있어 곧 맨유와 리즈의 맞대결을 의미하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됐다.

헌데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는 맨유와 리즈가 아닌 맨유와 리버풀의 맞대결에 바로 이 '장미전쟁'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일부에서는 두 팀의 유니폼 색깔만을 보고 짜맞춘 것이 분명한 '붉은 장미의 전쟁'이라는 해괴한 표현을 쓰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글자 그대로 '순 엉터리'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그 어느 곳에서도 맨유와 리버풀의 경기를 '장미전쟁'이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붉은 장미의 전쟁'이라는 표현 또한 엉터리이긴 마찬가지다.

물론, 기자나 언론사 그리고 축구팬이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맨유와 리버풀의 경기는 얼마든지 '장미전쟁'이 될 수 있다. '제3차 세계대전'이라거나 '울트라 메가톤 축구짱 대결'이라는 다소 엉뚱한 명칭도 좋다.

다만, 역사나 통계까지 인용해가며 맨유의 리버풀의 이번 맞대결을 '179번째 장미전쟁'이라고 부를 바에는 차라리 조금 더 정확하고 제대로 된 명칭을 사용하는 게 옳을 것이다.

이번 시즌 맨유와 리버풀의 맞대결은 이것으로 모두 끝이 났다. 리버풀이 챔피언스리그에서 탈락한 이상 두 팀이 다시 격돌하는 광경은 다음 시즌에나 볼 수 있다. 그리고 부디 그때에는 '180번째 장미전쟁'이 발발하지 않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