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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칼럼 해설위원/성민수 라스트라운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그 녀석,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우리나라의 격투기 팬들은 대부분 PRIDE에 대한 향수가 많은데 그보다 먼저 격투기를 접한 경우 1990년대 초반 일본 격투기 단체 중 판크라스나 UWF 등에 대해서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실전형 프로레슬러인 칼 고치나 루 테즈, 빌리 로빈슨 등은 엔터테인먼트가 주류를 이루는 미국이 아닌 일본에서 젊은 선수들을 가르쳤고 이들에게 사사받은 젊은 사자들은 프로레슬링이야말로 세계 최강 실전 격투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이라 믿었기에 일본에서 격투기를 시작할 토대는 튼튼했다.


당시 일본 프로레슬링은 미국에 비해 빠르면서도 투혼을 강조하던 터라 경기 스타일은 매우 거칠었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었던 젊은 사자들은 최강이라 믿는 프로레슬링의 실전성을 시험하고 싶은 욕구로 가득했고 자신보다 약해보이는 선배들에게 무조건 복종해야하는 시스템에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존 연공서열중심의 프로레슬링에 반발해서 새로운 단체인 UWF, 슈토, RINGS, 판크라스 등을 세웠고 후엔 PRIDE의 출범으로 절정에 이르렀으며 이런 움직임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판크라스는 일본 격투기 초창기에 중심에 있었던 단체이다. 캔 섐락, 바스 루턴의 외국인 강자와 스즈키 미노루, 후나키 마사카츠라는 일본의 걸출한 스타들은 교묘한 조합을 이루면서 예전 PRIDE나 최근 UFC의 4강 구도처럼 재미있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이후 섐락이 UFC로 갔고 스즈키 미노루나 후나키 마사카츠가 명성에 비해 실력의 한계를 보였으며 주먹을 사용하는 다른 단체에 비해 손바닥으로 때리는 공격은 약간 김이 빠진 느낌이 들자 서서히 흥행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후 PRIDE에게 맹주의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그래도 판크라스는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기에 무시할 만한 단체는 아니라 생각한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버렸다. UFC에서 맹활약하다가 돈 때문에 갑자기 WWE로 외도했다가 다시 격투기 돌아온 캔 섐락은 최근엔 동네북신세로 전락했고 약물사용까지 적발되면서 망신살을 샀으며 UFC와 소송에서 패하면서 경제적인 짐까지 지게 된 상황이다. 바스 루턴은 해설과 지도자로서 자리매김을 했기에 그나마 낫다.


기존 프로레슬링에 반기를 들면서 잘생긴 외모와 반항의 이미지로 1990년 초중반 일본 젊은이들의 컬트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후나키 마사카츠와 스즈키 미노루는 공교롭게도 그들이 그렇게 부정하던 프로레슬러로 활동 중이다. 두 사람은 현재 전일본 프로레슬링 소속이다.


스즈키 미노루는 5월 2일 나고야에서 펼쳐진 경기에서 챔피언 하마 료타를 꺾고 두 번째 트리플 크라운 챔피언에 등극했고 그전인 4월 말엔 후나키 마사카츠와 스즈키 미노루가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태그팀을 결성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프로레슬링을 하다가 반발해서 격투기로 뛰어든 이후에 재결합 한 것이다.


두 사람은 그들이 그렇게 폄하했던 선배들처럼 살고 있는 모습이다. 격투기를 하다가 다시 돌아왔지만 그들을 식언의 대표주자라고 보고 싶진 않다. 살면서 뜻대로 되는 일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현재 프로레슬링 단체에서 그들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그들도 제공할 것이 있으니 여전히 링에서 활약하는 것이며 그것으로 족하다 할 수 있겠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세상에서 두려울 게 없던 젊은이들이 먹고 살기 방법을 위해 스스로 부정하던 일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세월은 많은 것을 앗아갔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바로 그 녀석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