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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수의 라스트라운드] 골프, 그리고 투기 예전에 알던 형이 유학을 간다면서 골프를 취미 이상으로 해볼 것이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팔방미인인지라 뭘 해도 잘 하는 사람이었지만 골프를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말에 다소 어리둥절했다. 골프가 생각보다 이 사회에서 친교를 위해 필요하다는 말에 좋은 사진기나 갖고 싶고 프로레슬링이나 격투기에 관심을 갖고 있던 필자는 그저 또 다른 취미처럼 들렸다. 그게 벌써 12년 전이다. 필자는 멀쩡한 숲을 파괴한 뒤 농약을 뿌리면서 관리한 잔디밭에서 막대로 공을 쳐서 구멍에 집어넣는 일련의 과정이 그렇게 고급스러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회는 그렇게 여기고 있다. 그런 이미지는 이미 정착된 것이다. 오히려 필자와 같은 사람은 제대로 고급문화를 접해보진 않은 촌뜨기로 분류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골프에 관련된 .. 더보기
야구는 역시 데이터! 게임도 마찬가지? 프로야구 시즌이 끝난 뒤부터 함께하는 야구팬들의 고민, 특히나 긴 "겨울"을 보내는데 있어 추위만큼이나 야구가 없다는 사실이 어려움일 듯 한데요. 다양한 야구의 여파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야구게임"일 듯 합니다. 직접 야구를 하기에도 추운 겨울, TV에서도 야구를 보기 힘든 요즘, 괜찮은 야구게임은 분명, 야구팬들에게 좋은 선택이 될텐데요. 특히나, 야구란 종목을 게임으로 즐기는데 있어, 야구 그 자체의 매력을 느끼는데 있어 야구관람의 맛이기도 할 "데이터"에 대한 가치, 그것에 대한 선택을 즐길 수 있는 게임은 경쟁력이 있죠. 미국 메이저리그의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야구를 펼치는 게임인 "베이스볼 모굴"이 대표적인 작품, 비록, 화려한 그래픽이나 실재와 같은 현실성은 떨어지고, 조작의 쾌감과 그에.. 더보기
일본 격투기가 우리에게 더 현실적인 이유 [성민수의 라스트라운드] 제목이 꽤 무섭다. 현실적으로 격투기로만 볼 때 미국 격투기보단 일본 격투기가 더 우리에게는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펼치려고 하고 있지만 일본과의 관계가 복잡한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상황을 고려한다면 다소 포커스가 좁은 것이 아닌가도 싶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우리나라 단체의 발전이다. 허나 시장의 규모나 방영권 및 대상인구의 한계, 그리고 비즈니스의 방식을 본다면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얼마 전까지 1위를 다투던 일본의 PRIDE나 K-1은 마치 프로레슬링에서 그러했듯, 결국 미국으로 주도권을 넘기고 말았다. 최근엔 일본 단체들의 동향은 더욱 비관적이다. 센고쿠라는 단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격투기라는 장르가 망할 분위기는 아니나 현재로서 UFC와 다른 단체의 .. 더보기
[성민수의 라스트라운드] 단체 운영자의 딜레마 기업이 100년을 버티기는 어려운 일이라고들 한다. 그에 비하면 엔터테인먼트의 변화는 더욱 빠르다. 이에 한 단체가 오래 버티는 자체만으로도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복싱과 프로레슬링은 그래도 150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고, 초창기엔 팬들의 눈속임을 통해 돈을 버는 이벤트에서 한 쪽은 실전으로, 한 쪽은 더욱 발전한 이벤트로 자리를 잡아갔다면 격투기는 물론 그 원류를 고대까지 소급시키지만 사실상 채 20년도 안 되었다고 봐도 된다. 물론 브라질의 무규칙 격투기와 프로레슬링에서 보이던 실전 스타일은 그 원류라고 볼 수 있고 특히 둘의 결합으로 일본 격투기는 탄생했기에 좀 더 시간을 앞으로 당길 수도 있겠지만 격투기의 실질적인 출발점은 링스, 판크라스, UWF, UWFI, 그리고 UFC 같은 최근.. 더보기
김민수 선수의 재평가 일본 격투기에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원래부터 빈약한 기반에서 나름 자국의 메인스트림 장르까지 끌어올렸지만 결국 이젠 세계 격투기의 주도권을 미국에 넘긴 일본, 그러나 이들이 세계 1위를 하던 시절에 인기의 정점엔 밥 샙, 아케보노, 그리고 요시다 히데히코가 있었다. 우리의 인식과 달리 크로캅이나 표도르는 비록 강자이긴 했지만 일본 내 최고 인기스타는 아니었다. 전자 둘은 독특한 외모의 이벤트성 파이터였다. 그럼 요시다는 과연 어떤 선수일까? 사실 그는 세계 최강과는 거리가 멀었고 우리나라에선 별다른 인기는 없었으나 일본에선 1992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 사회적으로 유명했기에 격투기 실력에 비해선 받는 대우가 좋았다. 자국의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우리나라 전기영 선수를 .. 더보기